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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처럼 돌봐준 고모를..." 살인으로 끝난 '발달장애 촉법소년' 가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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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처럼 돌봐준 고모를..." 살인으로 끝난 '발달장애 촉법소년' 가족의 비극

입력
2023.03.29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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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중학생 흉기로 고모 살해
형사처벌 안 받지만 중증 자폐 앓아
"장애 범죄 되짚는 계기로 삼아야"

27일 13세 소년이 고모를 흉기로 살해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주택에서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27일 13세 소년이 고모를 흉기로 살해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주택에서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중학교에 막 들어간 13세 조카가 고모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 고모는 양육을 전담한 엄마 같은 존재였다. 조카는 형사 미성년자(만 14세 미만)라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건 개요가 알려지자 여론은 고삐 풀린 ‘촉법소년’ 제도의 폐해가 또 드러났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사연을 좀 더 들여다봤다. 조카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가벼운 죗값을 치르고 사회로 나온다 한들 이제 돌봐줄 이는 없다. 중증 장애를 가진 소년 범죄자를 보듬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13세 소년은 엄마 같은 고모를 왜 죽였나

서울용산경찰서는 27일 용산구 한 주택에서 고모에게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중학생 A군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가해자 나이와 가ㆍ피해자의 관계, 범행 동기 모두 충격적이다. 범행은 온라인 게임을 하지 말라는 피해자의 사소한 지청구가 발단이 됐다.

A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하지만 촉법소년이라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 경우 경찰은 통상 피의자를 석방해 보호자에게 인계한 뒤 가정법원(소년부)에 사건을 넘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촉법소년제의 빈틈을 악용한 또 하나의 소년 범죄로 기록될 법 했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2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군과 남동생은 중증 자폐를 앓고 있었다. 형제의 부모는 오래전 이혼했고 아버지도 5년 전 지병으로 사망했다. 할아버지와 고모 등 친척들이 형제를 거뒀다.

가족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유족 B씨는 “고인은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아이들을 챙겼다. 친부모여도 그렇게는 못 했을 것”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또 다른 유족 C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배변을 못한 지난해까지 고모가 똥오줌을 다 받아냈다”고 했다. 고모는 장애를 앓는 조카들을 지원하기 위해 주민센터와 치료센터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고 한다.

주변의 증언도 일치한다. 한 이웃은 “고인은 결혼도 안 하고 형제를 극진히 돌봤고, 아이들도 평소 고모를 엄마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영우 세상 아직... 처벌 후가 더 중요"

27일 13세 소년이 고모를 흉기로 살해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가. 뉴시스

27일 13세 소년이 고모를 흉기로 살해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가. 뉴시스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가 아직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세상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애정만으로 둘이나 되는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A군은 중학교에 들어간 뒤 사춘기를 겪으며 고모와 이따금 갈등했던 것으로 보인다. B씨는 “최근 A군이 급우 간 문제가 있어 학교에 다녀온 고인이 무척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의 실랑이는 자주 있는 일이다. 이 가족의 다툼이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건 A군의 장애와 무관치 않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또 다른 친척은 “가해자는 가벼운 소통만 가능할 뿐, 행동에 따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해 죄책감도 잘 느낄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끔찍한 범행을 촉법소년의 일탈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폐성 장애의 특징 중 하나가 하고 싶은 특정 행위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이라며 “비장애 아동의 게임중독과 동일선상에서 판단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진단했다.

경찰도 A군의 심리적ㆍ정신적 건강을 고려해 보호자 인계 대신 응급입원 조치를 결정했다. 이후 가정법원에 송치할 예정이다. 법원에선 죄질에 따라 사회봉사와 같은 1호부터 소년원에 수용되는 10호 처분까지 내리지만, A군은 중증 자폐 병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지연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행동치료 등을 포함해 A군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피해를 바로잡는 ‘회복적 사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장수현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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