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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저우언라이까지 소환한 尹... 국무회의서 23분간 한일관계 당위성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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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저우언라이까지 소환한 尹... 국무회의서 23분간 한일관계 당위성 설득

입력
2023.03.22 04:30
3면
0 0

"미로 속 갇힌 기분" 대통령으로서 고민 토로
"전 정부처럼 방치? 대통령 책무 저버리는 것"
현안 언급은 피해... "일본, 이미 수십 차례 사과"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내놓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내렸던 결단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장소는 국무회의 석상이었지만, 내용은 사실상 대국민담화와 다름없었다. 윤 대통령은 23분간 7,500여 자 분량의 모두발언 중 6,600여 자를 한일 정상회담과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있은 지 닷새,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후 보름 만이다.

모두발언에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대통령으로서 고민, 전임 정부 대일 외교 전략에 대한 비판, 야당의 지적에 대한 반박 등이 두루 담겼다. 다만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반성과 사과를 했다"며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둘러싸고는 또 다른 논란이 이는 모양새다.

위안부 합의 파기,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및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배제 등 양국이 겪었던 갈등을 나열한 윤 대통령은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 자체마저 불투명해져 버린 한일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왔다”며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렇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며 “미중 전략 경쟁,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 고도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미로 속 갇힌 기분"이라던 尹... 박정희ㆍ김대중 전 대통령 결단 따라

윤 대통령은 일본에 선제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했던 당위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 중국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고 박정희ㆍ김대중 전 대통령의 결단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는 처칠의 어록을 읽으며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저우언라이가 1972년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며 '차세대에 배상책임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고 한 발언도 인용했다.

반대 여론이 극심했던 1965년 국교 정상화 과정을 거론하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이 삼성, 현대, LG, 포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과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당시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식민 지배 35년간이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만찬 뒤 친교의 시간을 마친 뒤 지난 16일 도쿄 긴자의 한 노포에서 맥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만찬 뒤 친교의 시간을 마친 뒤 지난 16일 도쿄 긴자의 한 노포에서 맥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전 정부처럼 방치? 대통령 책무 저버리는 것"... '한일 정상화=국익' 강조도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전략과 야당의 굴욕외교 지적에 대해서도 작심하고 비판 입장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라고 직접 지칭하면서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며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하고,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빈손 외교라는 지적을 의식해 ‘한일 정상화=국익’이라는 등식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발표한 경기 용인의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유치하는 방안을 소개했고, 양국 기업의 글로벌 수주시장 공동 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1997년부터 2021년까지 24년간 한일 양국 기업들이 추진한 해외 공동사업은 46개 국가에서 121건, 약 27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정부 간 협의체 복원, 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과 같은 안보적 실익도 강조했다.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대승적 결단이 우리에게 손해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이다.

"일본, 이미 수십 차례 사과"... 왜곡 메시지로 읽힐까 우려도

다만 윤 대통령은 독도ㆍ위안부ㆍ후쿠시마 오염수 및 수산물 등 양국의 최대 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관련 현안을 언급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일본의 명시적인 사과 표명이 없었던 점 등 일반 국민들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쉬워하는 대목에 대해선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며 직접 일본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자칫 일본에 ‘추가적 입장 표명이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도쿄=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도쿄=서재훈 기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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