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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아픔 보듬은 ‘스즈메’… “영화 흥행 후 책임감 더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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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아픔 보듬은 ‘스즈메’… “영화 흥행 후 책임감 더 느껴”

입력
2023.03.08 16:14
수정
2023.03.08 16: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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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
신카이 감독 "문은 일상 상징... 한국인 일본인 마음 유사"

스즈메는 거주지 인근 폐허에서 우연히 정체불명 문을 발견한다. 문은 여러 시공간으로 이어진다. 미디어캐슬 제공

스즈메는 거주지 인근 폐허에서 우연히 정체불명 문을 발견한다. 문은 여러 시공간으로 이어진다. 미디어캐슬 제공

등굣길에 한 남자가 묻는다. “이 근처에 폐허가 없니?’라고. “문을 찾고 있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고생 스즈메(목소리 연기 하라 나노카)는 무심코 답을 해주고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문득 호기심이 인다. 그 남자 쇼타(마쓰무라 호쿠토)에 관심이 있기도 하다. 자기가 일러준 폐허의 장소로 급히 가본다. 그곳에서 스즈메는 희한한 광경과 마주한다. 물이 고인 노천탕 한가운데 문이 하나 있다. 문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안에 있다. 예기치 않던 스즈메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8일 개봉·12세 이상 관람가)은 판타지다.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 소재다. 정체불명 문을 통해 재난이 세상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쇼타는 일본 전국을 돌며 대를 이어 이 문을 단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스즈메의 실수로 문을 지키던 묘석이 고양이가 돼 도망치고, 쇼타는 세발 달린 작은 의자가 된다. 일본 곳곳이 재난, 즉 대지진에 휩싸일 위기에 처한다. 스즈메는 쇼타를 대신해 대지진을 막아야 한다. 제목에 ‘문단속’이 들어간 이유다.

스즈메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었다. 마음의 상처가 있기에 문단속에 더 필사적이다. 스즈메는 일본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대지진의 아픔을 상징한다. 12년 전 참사를 겪었던 일본인들의 상처 어린 기억은 스즈메를 통해 상기된다. 그와 쇼타의 남다른 여정이 펼쳐지는 장소 역시 의미심장하다. 미야자키현에서 시작해 에히메현, 효고현, 도쿄, 후쿠시마현을 거쳐 이와테현으로 이어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예전 큰 지진이 일어났던 곳을 지나간다. 모험의 종착지 이와테현은 스즈메의 고향이다. 엄마를 잃은 곳이다. 스즈메는 쇼타와 협력하고 갈등하며 연심을 주고받다 상처를 치유한다. 관객의 따스한 웃음과 함께 종국에 위안을 얻는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개봉해 관객 1,000만 명이 본 이유를 알 만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서정미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미디어캐슬 제공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서정미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미디어캐슬 제공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다. 신카이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잇는 일본 애니메이션 대가다.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 등으로 국내에도 두꺼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너의 이름은.’(380만 명)은 지난 6일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카이 감독은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빼어난 영상미를 선보인다. 푸른 하늘과 바다, 숲의 신록 등이 명징한 색조와 섬세한 묘사로 표현돼 시각적 즐거움을 안긴다.

신카이 감독은 8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에서 배우 하라 나노카와 함께 내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서 문을 사용하는 방법을 인상 깊게 보고 문을 소재로 떠올리게 됐다”며 “문은 일상을 상징하는 것이라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나가며 ‘다녀오겠습니다’라 말하고, 돌아와서는 물을 열며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며 “재난은 이런 일상을 막는다는 생각에 문이 상징적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도깨비’ 속 주인공 김신(공유)과 지은탁(김고은)은 빨간 문을 통해 시공간을 오간다.

신카이 마코토(왼쪽) 감독과 주인공인 스즈메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하라 나노카가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신카이 마코토(왼쪽) 감독과 주인공인 스즈메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하라 나노카가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도 재난을 다뤘다. 그는 두 애니메이션으로도 일본에서 각각 관객 1,000만 명을 모았다.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관객에게 책임감을 더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재미 있는 애니메이션은 만들 생각이 없었다”며 “재난에 대한 기억을 젊은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뿐”이라고 덧붙였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 있는 비결을 묻자 “제가 한국 관객에게 묻고 싶은 점”이라며 웃었다. 그는 “서울에 오면 도쿄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비슷한 점이 많다”며 “도시 풍광은 사람들 마음이 반영된 것인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마음 형태가 유사하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파도처럼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으나 문화는 강력히 연결돼 늘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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