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은 대선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조력했던 이른바 ‘윤석열 사람들’은 현재 어디에 있을까. 대통령 주변의 인물 구도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뿐만 아니라 정부의 방향성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2021년 3월 4일) 1년 만에 대선에서 승리한 만큼 주변 인물의 변화는 윤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인사 스타일을 읽을 수 있는 척도로 삼을 만하다. 20대 대선 1년을 맞아 '대통령의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어 본다.
①1년 만에 전면에 선 관료 출신
대선 승리 후 1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기획재정부 등 관료 출신들의 급부상이다. 이들은 대통령실과 내각의 실세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기재부 출신 한덕수(행정고시 8회) 국무총리가 행정부 2인자로, 김대기(행시 22회) 비서실장이 대통령실의 2인자로 각각 부상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1년 전 대선 캠프 시절에는 윤 대통령과 인연이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매일 윤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는 김 비서실장은 오히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선 당시 후보였던 최재형 의원을 도왔다. 그럼에도 예상을 깨고 첫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그는 집권 초 윤 대통령 측근들의 세 과시 분위기 속에서도 원칙주의자의 면모와 함께 친화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실과 당, 정부 사이에서 조율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쌍두마차인 추경호(행시 25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상목(행시 29회) 경제수석 역시 기재부 출신이다. 대구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추 부총리는 대선 때 윤석열 캠프 원내대책단장으로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기획조정분과 간사를 맡으며 신뢰를 쌓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재부 1차관을 지낸 최 수석은 추 부총리 자리를 이을 경제 '투톱'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윤 대통령의 수출 최우선 전략 등에 맞춰 산업통상자원부 출신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1년 전 대선 때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지금은 정책뿐 아니라 정무적인 조언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관섭(행시 27회) 국정기획수석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왕수석’ 또는 ‘차기 비서실장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수위 시절 경제2분과 간사로 인연을 맺은 이창양(행시 29회) 산자부 장관은 수출 주무부처 장관으로 윤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가장 많이 하는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그동안 대통령들이 주로 정치의 관점으로 국정을 접근했다면 윤 대통령은 정책ㆍ행정을 중심으로 국정에 접근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전문성과 경력을 갖춘 관료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기재부 출신 관료의 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②요직마다 분포된 검찰... '윤 사단'과 '복심 그룹'
'검찰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 출신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관료 출신들이 대선 이후 새로 얼굴을 내밀었다면, 정부와 내각 요직에 기용된 검찰 출신들은 윤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는 게 특징이다. 이들이 기재부 라인보다 더 실세로 통하는 이유다. 검찰 출신은 한동훈(사법연수원 27기)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한 ‘윤석열 사단’과 이상민(연수원 18기) 행정안전부 장관을 위시로 한 ‘복심 라인’으로 구분된다.
한 장관은 대선 당시엔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지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원하진 못했다. 하지만 장관에 임명된 후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등 여야가 부딪치는 현안마다 야당과의 설전을 피하지 않으면서 단번에 차기 여권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한 장관의 발탁은 이원석(연수원 27기) 검찰총장, 이복현(연수원 32기) 금융감독원장 등 '윤석열 사단'이 정부 요직에 오르게 하는 초석이 됐다.
이 장관과 비슷한 길을 걸은 '복심 라인'은 대선 당시 변호사 신분이어서 자유롭게 윤 대통령을 도왔지만 존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기 내각 인사검증을 도맡아 한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ㆍ서울대 법대 4년 후배다. 대선 직전까지 서초동 법률팀에서 법률자문과 네거티브 대응을 주도했고 인수위에선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주진우(연수원 31기) 법률비서관과 이원모(연수원 37기) 인사비서관은 대통령실 핵심 참모로 분류된다. 이시원(28기) 공직기강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로 좌천됐을 당시 대구고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내각에서도 정치인 타이틀에 가려진 검찰 출신 장관들이 여럿 있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선배인 권영세(연수원 15기) 통일부 장관과 후배 그룹인 원희룡(연수원 24기) 국토교통부 장관, 올해 6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는 국가보훈처의 박민식(연수원 25기) 처장이 대표적이다.
③ '찐윤' '친윤' 목소리만 남은 국민의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에는 이렇다 할 계파가 없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정당이지만 21대 국회의원 115명 중 초선이 63명(54.7%)에 달해, 계파보다 선수 중심으로 뭉쳐 활동하는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지난 1년간 국민의힘에선 선수 중심 문화가 사라졌다. 대신 '친윤석열계' 파워가 세졌다. 인수위 시절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실과 내각 초기 인선 작업을 주도했던 장제원 의원이 자연스럽게 친윤 그룹 내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장 의원은 지난해 8월 대통령실 인적쇄신 칼바람이 불면서 한발 물러난 듯했다. 그러나 올해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 레이스가 본격화된 이후 명실상부한 '윤심 메신저'로 부각되면서 입지를 재확인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을 지원했던 권성동·이철규·윤한홍 의원은 여전히 윤 대통령의 '의형제'로 불린다. 권 의원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노출시켜 위기에 몰린 듯했으나 최근에는 관계가 회복됐다는 전언이 많다. 대선 전략을 주도하고 후보를 밀착 수행한 친윤계 의원들도 당내 주류가 됐다. 김정재·정점식·유상범·박수영·박성민·정희용·배현진·이용·서일준 의원 등이 핵심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친윤계의 파워는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대선 당시 원내대표로서 이준석 대표 칩거 사태를 봉합하며 승리에 기여했던 김기현 의원은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대표에 올랐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존재감이 부각된 건 주호영 원내대표이다. 대선 당시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지만 '친윤' 의원들에 가려 윤 대통령과의 호흡이 부각되진 못했다. 그러다가 여당 원내대표로 뽑히며 대통령실과 당의 조율을 도맡았다. 주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가장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올 초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 순방에 직접 동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정계 데뷔를 도운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이준석 대표 내홍 사태를 수습하고 새 당대표 선출까지의 중간계투 역할을 무난히 마무리해 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한때 당대표 도전을 고민했던 정 비대위원장은 차기 국회의장으로 방향을 돌린 상태다.
④ 대선 승리를 함께 했지만... 내쳐진 외연확장 세력
반대로 대선 때 외연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던 이들 중 '친윤' 범주에 들지 못한 그룹은 내쳐졌다.
이준석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이 전 대표는 '30대 0선 당대표'에 오른 후 보수 진영을 회생시킬 젊은 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부터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 대선 이후 성상납 의혹 관련 징계로 대표직이 박탈됐고, 이번 전당대회에서 반윤그룹 지원사격에 나서며 '마이웨이'를 선언한 상태다.
후보 단일화의 파트너, 인수위원장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안철수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대통령실로부터 "국정운영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몰리는 상황이 됐다. 다만 불협화음은 인수위 시절부터 감지됐다. 초기 내각 인선 과정에서 안 의원이 자기 측 인사를 무리하게 추천하고, 새 정부 기조에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해 윤 대통령이 언짢았다는 후문이다.
1년 전 여러 부처 장관 하마평을 섭렵했던 나경원 전 의원도 윤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3년 후배로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지만 전당대회 출마설, 저출산 대책을 놓고 엇박자를 보였고, 결국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유엔기후환경대사에서 모두 해임됐다. 다만 나 전 의원이 이번 전대에서 김 의원 지원에 나서며 '관계 회복 시그널'을 꾸준히 보내는 상황이다.
⑤ 전폭적 신뢰 여전한 원로… ‘구설 주의' 분위기도
1년 전에는 정치권 외곽에도 다양한 경륜의 지원군들이 있었다. 정상명 전 검찰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홍일 전 검사장이 직간접적으로 윤 대통령 대선을 지원했다. 다만 세 사람은 아직 배후에서 조언을 하는 데 머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 들어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나서고 있는 김한길 전 새천년민주당 공동대표는 단연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은 야당 대표 시절 한직을 돌던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윤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던 원로 측근 그룹 일부는 부침을 겪었다. 판사 출신인 신평 변호사는 ‘안철수 의원이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가 논란이 되자 김기현 의원 후원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정경유착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구설에 올랐다.
원로 측근 중엔 윤 대통령의 죽마고우도 다수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가는 윤 대통령 스타일상 가장 신뢰가 두터운 그룹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철우 연세대 교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을 걷고 있다. 김 안보실장은 대선 당시 '외교 과외'를 전담한 데 이어 초대 국가안보실장 자리를 맡아 외교안보 분야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이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아들인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많은 조언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첫 공개 행보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우당 기념관 개장식으로 고를 정도였다. 다만 이 교수는 윤 대통령 당선 직후 "임기가 끝나고 다시 연락하자"며 친구로 남겠다는 선언을 했으며, 지금까지 공직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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