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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길, 이재명의 선택

입력
2023.03.02 18:00
수정
2023.03.02 18:19
26면
0 0
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이 대표에게 본격 닥쳐들 사법 쓰나미
대표 리스크 안고 제1야당 역할 어려워
당과 대표 놓고 선택해야 할 시간 임박

논의는 솔직해야 실체에 닿는다. 핵심은 명확하다. 더불어민주당의 내홍은 결국 한 지점으로 귀착된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 여부다. 나아가 그가 내년에 막강한 공천권을 행사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지가 그것이다. 다른 논점은 다 솔직하지 않거니와 의미도 없다.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가 놀랍긴 하지만 압도적 부결표가 나왔어도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었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날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이 대표 개인에 대한 호불호 없이 아주 현실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말이다.

이 대표를 겨냥한 법 집행은 이제 쓰나미처럼 덮쳐들 것이다. 앞으로도 검찰소환과 체포동의를 수시로 요구할 대형 사건들이 최소 3건이다. 용케 또 영장집행을 피한다 해도 기소 후 쉴 틈 없이 법정을 오가야 한다. 오늘 시작되는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재판기일도 격주마다 잡혀 있다. 다 몇 년은 결사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사건들이다.

부질없는 뒷얘기지만 이 대표는 이번에 영장심사에 대범하게 응하는 게 나았을 뻔했다. 한동훈 장관의 설명이 전부라면 재판부는 ‘다툼의 여지’를 두고 크게 고심했을 것이다. 구속된 공범들과의 구체적 연결 관계는 채 나오지 않았고, 대장동 개발로 이 대표가 얻은 이익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느 영장판사든 제1야당 대표 구속의 부담을 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탄압수사 주장에 힘이 실리고 이후의 소환 요구와 영장청구에도 얼마간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안전한 길을 택해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만에 하나 인신구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부수란 원래 위험을 감수하고 던지는 것이다.

물론 그랬어도 리스크가 사라지진 않는다. 다만 처분을 늦추거나 정치적으로 훗날을 도모할 여지라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대표의 거취는 정치영역을 떠나 사법영역으로 옮겨졌다. 고발→수사→기소→판결의 사법체계가 작동하는 한 이 대표가 자유로워지긴 어렵다. 글쎄, 검찰이 모조리 불기소 처분하든지, 법원이 다 무죄 판결하는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나면 모를까. 보지 않으려 해도 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선택은 제한적이다. 거대 정당의 운명을 맡길 만한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그를 대표로까지 올린 업보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이재명 결사옹위에 반대하는 의원들과 과감히 결별하든가, 아니면 이 대표에 대한 미련을 잠시 거두고 새 지도체제와 새 분위기로 당을 다시 꾸리든가.

이 선택은 득실 계산이 어려운 난제가 아니다. 전자를 택할 경우 민주당은 제대로 된 야당 역할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합당한 비판들마저 대표 리스크에 걸려 다 무화(無化)하고 있는 현상을 매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의 가장 큰 명분인 독재·민주론도 반대파 색출 주장까지 나오는 살벌한 당 문화에선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정부·여당에 이런 기여도 없다. 오죽하면 개딸보다 현 정권이 이재명체제 유지를 더 원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까. 더욱이 이 대표가 사법절차상 공천권 행사 시점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후자의 경우라야 비로소 민주당은 견제 세력으로서의 대안적 위상을 회복하고 차기 정권을 도모할 힘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일사불란한 당 체제는 정작 그때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이 대표에게 달렸다. 하반기부터 정국은 어차피 총선 분위기로 가게 돼 있다. 선택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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