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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면 로맨스, 액션이면 액션… 현빈이 뭐든 다 되는 이유

입력
2023.03.02 16:30
수정
2023.03.02 16:36
12면
0 0

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영화 속 현빈의 다양한 모습.

영화 속 현빈의 다양한 모습.

영화 ‘교섭’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절정 장면에서 주요 인물 박대식(현빈)이 빠지기 때문이다. 대식은 국정원 요원이다. 외교관 정재호(황정민)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국민을 구하려 한다. 대식과 재호는 절정 직전까지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이다. 하지만 납치를 주도한 탈레반 지도자를 만날 때는 재호 혼자다. 서스펜스 밀도가 가장 높고, 배우로서 기량을 한껏 펼칠 수 있는 대목에서다. 배우라면 욕심이 나고 아쉬움이 클 만하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배우(아주 많다)라면 이 장면만으로도 대식 역을 고사할 만하다. 당대 최고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류 스타 현빈이 이를 알고도 출연했다니 의외였다.

오래전부터 현빈하면 떠오른 단어는 배우보다 아이돌이었다. 눈길을 단번에 끌 만한 외모인 데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속 멋들어진 역할로 큰 별이 됐으니 인상이 그렇게 굳어질 만했다. 활동 초기에는 장수할 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한동안 이렇다 할 히트작, 특히나 영화 흥행작이 없었으니까.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2011)으로 전성기를 다시 일궜을 때도 조금은 심드렁하게 받아들였다. 비슷한 시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와 ‘만추’(2011)로 베를린영화제에 동시 초청됐을 때는 운이 좋은 배우라 여겼다. 그의 연기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공개가 계속 미뤄졌던 ‘만추’가 ‘시크릿 가든’ 열풍을 발판으로 개봉까지 하게 되고, 마침 베를린까지 가게 되면서 시선을 더 끌었던 거니까.

현빈은 영화 흥행에는 유달리 약했는데, ‘공조’(2017)가 관객 781만 명을 모으면서 징크스를 깼다. ‘공조’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현빈이 연기한 림철령에 끌리지는 않았다. 코미디에 무게중심을 둔 영화이다 보니 액션에 눈이 가지는 않았다. 북한 남자는 잘생긴 배우가 주로 맡던 당시 유행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현빈의 진면모를 (나만) 뒤늦게 발견한 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2020)이었다. 우연히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게 된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가 북한군 장교 이정혁(현빈)과 사랑에 빠진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현빈을 통해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는다.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그의 목소리와 외모가 드라마를 연착륙시킨다.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한 외국인 여성 감독은 좋아하는 한국 영화(!)를 묻자 ‘사랑의 불시착’을 언급했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 해외 영화인이라면 흔히 언급하는 유명 감독의 영화가 아니어서, 심지어 드라마라서 놀랐다. 현빈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영화 '교섭'은 액션 장면이 많지 않으나 현빈의 액션 연기가 얼마나 빼어난지 보여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교섭'은 액션 장면이 많지 않으나 현빈의 액션 연기가 얼마나 빼어난지 보여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교섭’은 현빈의 액션 장면이 적어 실망스럽다는 관객 평이 있으나 그의 매력이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본다. 대식이 오토바이를 타고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짧지만 강렬하다. 잠시 등장하는 대식의 초년 요원 시절 모습은 의도치 않게 청초한 면모를 드러낸다. ‘교섭’은 현빈이 액션과 로맨스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연기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현빈이 ‘교섭’ 출연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영화사 관계자들은 예상 밖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톱스타라면 출연을 마다할 요건이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뿜어내는 빛에 가릴 수 있고, 무엇보다 대식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빠지게 돼서다. 되돌아보면 현빈은 돈이 되지 않을 듯하고, 배역은 눈에 띄지 않을 듯한 영화에 곧잘 모습을 보였다. 현빈이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를 연기했던 저예산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2009)가 대표적이다.

현빈은 새 영화 ‘하얼빈’을 촬영 중이다.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았다. 일본에 팬이 많은 한류 스타로서는 의외의 행보다. ‘공조’와 ‘공조2: 인터내셔날’(2022) 제작사 JK필름의 길영민 대표는 “주변 만류가 있었을 만도 한데 출연한 걸 보면 현빈이 연기에 대한 주관이 얼마나 뚜렷한지 보여준다”며 “꽃미남 수식에 가려 제대로 평가 못 받는 부분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현빈은 출연 결정을 쉽게 내리는 배우는 아니다. 몇 개월을 심사숙고해 차기작을 선택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작품 선택이 까다롭지만 일단 정해지면 정성을 다해 연기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시크릿 가든’ 속 까칠한 부자 김주원(현빈)이 유행시킨 대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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