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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비 1,000만원 써야 효과" 학폭, 부모 권력·재력 싸움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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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비 1,000만원 써야 효과" 학폭, 부모 권력·재력 싸움으로 변질

입력
2023.03.02 10:00
수정
2023.03.02 10:1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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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말하는 학폭
"아이들은 화해했는데 부모는 계속 싸워"
"생기부 기재 강화하면 소송 더 늘어날 것"

지난달 25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뉴스1

지난달 25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된 정 변호사는 아들 학폭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인 이날 사퇴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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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징계를 방어하기 위해 했던 조치들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정 변호사의 사례처럼 학부모가 가해자의 반성, 피해자의 회복과 화해를 돕기는커녕 원만한 해결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강화 등 '엄벌주의' 처방이 이런 흐름을 강화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이들은 화해했는데 부모님 싸움으로...잘 해결될 사건도 소송으로"

1일 한국일보와 통화한 교사들은 학교폭력 문제가 학부모의 재력·권력 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6년간 근무했던 A교사는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와 비교했을 때 강도 높은 폭력보단 아이들끼리 감정이 상하는 등의 가벼운 일이 많다"며 "그래서 아이들은 금방 화해를 하고 잘 지내는 반면, 학부모끼리 감정이 상하는 바람에 사안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A교사는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될 때부터 변호사를 대동하는 건 기본이고, 학부모들이 법적 싸움에 얼마의 돈을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A교사는 "교육열이 높은 학군이어서 학교폭력 전문 법률서비스도 발달돼 있다"며 "학부모 사이에서 '변호사 선임에 300만 원을 쓰면 효과가 없다, 1,000만 원은 써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퍼져 있다"고 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가해자가 제기한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은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모두 325건이었다.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고발당할까 두려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왕건환 교사노조연맹 교권보호 팀장은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열심히 피해 학생을 보호하려다가 재판을 받는 선생님들도 많다"며 "그래서 자기 방어를 위해 조사 과정을 녹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생부 기재 강화 정답일까..."필요" vs "소송만 늘어난다"

학교폭력 '근절'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강화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앞서 교육부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제전학 조치를 예외 없이 졸업 후 2년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고시를 개정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28일 “현재 정시에서는 대학이 학폭 가해자의 징계 여부를 검토하고 반영하는 규정, 절차가 대부분 없고, 있다하더라도 실제로 반영했는지를 알 수 없다”며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심각한 학폭에 대한 조치사항을 필수적으로 확인하고 반영하는 방안 검토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선 학급교체와 강제전학 조치는 10년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생활기록부 기재 강화처럼 학교폭력을 대입에 직접 반영할 경우 정 변호사와 같은 학부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수년간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해 온 B교사는 "가해자 측 보호자들은 아이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소송도 불사하기 때문에 소송 발생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부모가 자신의 자녀라도 잘못한 부분은 떳떳하게 처벌받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B교사는 "당사자들이 원하면 학교폭력을 심의하기 전에 갈등을 조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근병 서울교사노조위원장은 "생활기록부 기재로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겠지만, 입시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소송을 거는 문화가 확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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