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해자 소송 증가에 전담 재판부 신설
심각성·지속성·고의성·반성·화해 여부 따져
"징계 소송 승소 확률 낮아... 징계권 존중"
"강제 전학 처분 기록, 2년 뒤 삭제" 논란도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학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끝장 소송'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폭 관련 소송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징계 기록을 없애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법원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학교폭력 징계 취소 소송 증가 추세
정 변호사 아들처럼 학폭으로 받은 징계 기록을 소송을 통해 지우려는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법조계의 최근 움직임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20일부터 행정 1·2·5단독 재판부에 학폭 징계 사건을 전담하도록 했다. 학폭 소송 증가에 대비한 조치로 해석된다. 학폭 가해자들을 겨냥한 로펌들의 수임 경쟁도 치열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화로 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징계 취소소송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묻지마 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①가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②대학 등 입시와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인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정 변호사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는 학부모들이 소송전을 벌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했다.
"법원, 징계권 존중... 가해자 이길 확률 30%"
한국일보가 27일 대법원 확정 판결 시스템을 통해 징계 불복 소송 30건을 분석한 결과, 법원은 일단 접수된 피해 내용이 학폭에 해당되는지 여부부터 꼼꼼히 살폈다. 예컨대 서울행정법원은 2021년 7월 유튜브를 통한 교내 동아리 홍보를 방해한 고교생의 징계를 취소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장난"이라고 판단했다. 학생이 피해를 호소하더라도 무조건 학폭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폭으로 인정한 뒤에는 5가지 기준을 적용해 징계의 적법성을 따졌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가 학폭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가해 학생의 반성 △화해 정도에 따라 적절히 징계한 게 맞는지 살펴본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해자의 교화 가능성과 피해자의 장애인 여부도 가중·감경 요소로 참작한다.
법원은 이런 기준을 적용해 정 변호사 아들이 최악의 학폭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 아들이 ①2017년 5월부터 2018년 1학기 초까지 ②피해 학생의 인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을 ③친구들조차 문제를 제기할 만큼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아들이 가장 가벼운 징계인 서면사과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화해는커녕 반성과 선도 가능성도 없다고 봤다.
이렇듯 법원은 절차적 위법이 없다면 징계 기관의 판단을 대체로 존중하고 있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는 2021년 8월 핸드볼부 부원들을 6개월 동안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한 고교생의 강제전학 조치를 두고 "교육전문가인 교육지원청의 장이 심의위원회 요청에 따라 징계조치한 결과는 가능한 한 존중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윤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경중에 상관없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징계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대략 30%"라며 "사실관계 오인 같은 논리 없이, 단순히 징계가 과도하다고 주장하면 인용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전학 기록 졸업 2년 후 삭제" 법도 도마에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건을 계기로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상 서면사과 등 가벼운 징계는 졸업과 동시에 사라지고, 퇴학을 제외한 출석정지와 전학 등 무거운 처분도 졸업한 날부터 2년이 지나면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없어진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기록도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출석정지는 졸업한 날부터 5년, 전학은 10년 뒤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자"는 법안을 내놨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교사 출신의 나현경 변호사는 "삭제 기한 연장은 선도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폭력예방법의 입법 취지와 상충되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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