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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꿀벌' 올해는 200억 마리 넘어설 수도...시설 원예까지 연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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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꿀벌' 올해는 200억 마리 넘어설 수도...시설 원예까지 연쇄 피해

입력
2023.03.03 05:00
수정
2023.03.03 10:39
19면
0 0

지난해 이어 꿀벌 폐사 농가 속출
정부, '응애 방제제' 원인 지목
농가는 겨울철 이상기후에 주목
양봉농가 9일 대규모 집회 예고

전남 화순군 양봉농장에서 정진우씨가 꿀벌이 사라진 벌집을 살펴보고 있다. 화순=김진영 기자

전남 화순군 양봉농장에서 정진우씨가 꿀벌이 사라진 벌집을 살펴보고 있다. 화순=김진영 기자

"전부 새까맣게 죽었어요. 또 얼마나 죽어 나갈지 이제 짐작도 안 됩니다."

지난달 25일 전남 화순군 양봉 농가에서 만난 정진우(48)씨는 벌통 대신 바닥을 먼저 가리켰다. 벌통에 모여 있는 꿀벌보다 바닥에 떨어진 죽은 꿀벌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11월 정씨는 통마다 꿀벌이 가득 찬 벌집 6개씩을 채웠다. 하지만 꿀벌이 월동을 끝내고 활동을 시작하는 지난달 300개에 달하는 벌통 중 온전한 것은 170개 남짓뿐이다. 그나마 남은 벌통에도 절반 정도의 벌집만 온전한 상황이다. 얼마나 더 죽어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정씨는 "농약에 내성을 가진 꿀벌이 오염된 먹이를 벌집으로 가져와 애벌레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보다 꿀벌 급감 속도 더 심해

최근 몇 년 동안 심각해진 꿀벌 감소가 올해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76억 마리에 이어 올해는 200억 마리 이상 꿀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기후변화 지표생물인 꿀벌의 급격한 감소는 농작물 생산 감소로 이어져 농업 분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두 달간 전남 16만 개를 비롯해, 경기 8만8,300개, 전북 4만7,000개, 광주 9,400개, 충북 1,301개 등의 벌통 피해가 접수됐다. 벌통 한 개당 평균 꿀벌 2만 마리가 서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6개 지자체에서만 60억 마리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전국 4,521개 양봉 농가에서 41만여 개의 벌통 피해가 접수됐다. 약 82억 마리가 3개월간 사라졌는데 올해는 소멸 추세가 더 빠르다. 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기준으로 1만546개 양봉 농가에서 88만여 벌통이 피해를 입어 176억 마리가 사라졌다.

2022년 벌통 피해 농가 상위 5곳. 그래픽= 박구원 기자

2022년 벌통 피해 농가 상위 5곳. 그래픽= 박구원 기자

양봉 농가들은 막막한 상황이다. 월동을 마친 벌통 30%는 세력을 키우기 위한 '희생군'으로 사용된다. 세력이 약한 벌통을 세력이 강한 벌통에 섞어 힘을 키우면 5월 아카시아꽃 개화 시기부터 본격적인 꿀 채집에 들어간다. 정씨는 "올해는 희생군도 없고 살아남은 꿀벌도 세력이 너무 약해 도저히 꿀을 채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식물 번식을 돕는 화분 매개 기능을 하는 꿀벌 개체수 급감은 다른 농작물 작황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전북 고창에서 수박 농사를 하는 김연호(65)씨는 “지난해 5만5,000원 하던 벌통 대여 값이 올해는 7만 원까지 올랐다”며 “인건비는 물론 각종 농자재 가격이 30% 이상 상승하는 상황에서 벌통 가격까지 급등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에서 참외 농사를 하는 배정모(48)씨도 "꿀벌 대신 사람이 직접 붓이나 살포기를 이용해 꽃가루를 옮기는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지난달 27일 "꿀벌 수 감소로 화분매개 곤충 이용 방법이 정립 안 된 수박과 참외 농가에 이달까지 꿀벌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달 25일 전남 화순군 양봉농장 한편에 꿀벌 폐사 피해로 텅 빈 벌통이 가득 쌓여 있다. 화순=김진영 기자

지난달 25일 전남 화순군 양봉농장 한편에 꿀벌 폐사 피해로 텅 빈 벌통이 가득 쌓여 있다. 화순=김진영 기자


전문가 "복합적 원인 파악, 정교한 대책 마련"

꿀벌 개체 수 급감의 심각성에 정부도 잇따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22일 농림축산식품부는 꿀벌 감소와 관련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주요 원인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진드기 일종으로 몸집이 1~2㎜ 정도인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고,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긴다. 장기간 같은 성분 방제제를 사용해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는 게 농림부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6~10월을 응애 집중 방제 기간으로 설정하고, 응애 방제약품 개발 등 방제체계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양봉 농가들은 특히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겨울철 따뜻한 날씨에 여왕벌이 일찍 산란을 하면서, 활동에 나선 꿀벌이 귀소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설명이다. 이른 산란으로 애벌레들이 고치가 되는 과정에 응애들이 침투하면서 꿀벌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양봉농가와 전문가들은 보다 정교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씨는 "꿀벌 급감 원인 파악을 위해선 방제제 이외에 인근 농가에서 사용하는 잔류 농약 검사 등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준 경상국립대 식물의학과 교수도 “이상기후와 무분별한 방제제 사용, 농약 누적, 단모작, 도시화, 봉군 밀도 과밀화 등 복잡적 요인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양봉협회는 9일 세종시 농림부 앞에서 회원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화순=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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