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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수 채우려 화장실도 못 가는데 최저시급...'다음 소희' 콜센터는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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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수 채우려 화장실도 못 가는데 최저시급...'다음 소희' 콜센터는 '현재 진행형'

입력
2023.02.24 15:13
수정
2023.02.24 15:2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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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실적 압박에 감정노동 강요"
콜센터 상담사 48% "죽고 싶다는 생각"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 기능 못해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주인공 소희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고통받다 2017년 극단적 선택을 한 통신사 하청 콜센터의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양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주인공 소희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고통받다 2017년 극단적 선택을 한 통신사 하청 콜센터의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양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고객센터에서 18년째 근무 중인데 월급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인센티브를 포함해 240만 원입니다. 최저시급 수준이죠. 매달 실적 경쟁을 시키고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가 달라집니다. 직원들은 화장실을 자주 갈까 봐 물도 못 마시면서 일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 많이 울었습니다."

2017년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양 사망 사건이 모티브인 영화 '다음 소희'가 콜센터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노총이 마련한 단체 관람 행사에 참석한 여러 콜센터 노조원들은 "현재 상담사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24일 노동계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는 8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여성 노동자 비율이 75~80%로 압도적이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217만 원으로, 전 산업 평균임금 대비 81.2%에 불과했다. 곽현희 콜센터노조연대 의장은 "진입 장벽이 낮아 경력 단절 여성이나 청년이 많다"면서 "일이 좋아서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단언했다.

2020년 3월 당시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의 120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앞과 옆자리를 비워둔 채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 당시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의 120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앞과 옆자리를 비워둔 채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소희'의 실제 모델인 고 홍수연양이 근무한 통신사 하청 콜센터는 2016년 입사자(594명)보다 퇴사자(631명)가 많을 정도로 업무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 원청 격인 통신사는 비슷한 콜센터 여러 곳을 전국에 두고 매일 실적을 집계해 순위를 매겨 공지했다. 상담 노동자들에게는 끊임없이 실적 달성을 재촉하는 압박이 가해졌다. 정해진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남아서 처리하도록 해 야근은 일상이었고, 그럼에도 쏟아지는 욕설과 노골적인 성희롱은 오롯이 노동자의 몫이었다.

송지현 삼성카드 고객서비스센터노조 지부장은 "이 사건이 발생한 뒤 6년 정도가 흘렀는데 변한 건 단 15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카드 고객서비스센터는 악성 고객이 욕설이나 성희롱을 할 경우 한 차례 경고 조치를 한 뒤 통화를 강제 종료한다. 이후 피해 수위에 따라 5분에서 15분 사이의 '케어 시간'이 주어진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감정노동자 보호법) 이후 생긴 장치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권고 수준이라 대기업이나 직고용 업체가 아닌 영세 하청업체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안 지켜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얘기다.

한국노총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CGV에서 마련한 영화 '다음 소희' 단체 관람. 한국노총 제공

한국노총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CGV에서 마련한 영화 '다음 소희' 단체 관람. 한국노총 제공

실적 압박은 여전하다. 하루에 배정된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당장 월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극심한 경쟁 속에서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이미양 한전CSC 노조 지회장은 "모든 것이 실적"이라며 "실적이 부진한 사람들은 관리 대상이 돼 면담을 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월급은 최저시급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전CSC의 경우 두 차례 평가 모두 최고등급(S)을 받더라도 받을 수 있는 최대 월급은 270만 원 정도다.

심지어 성폭력이나 자살예방 상담센터처럼 '상담의 질'이 중요한 곳마저 실적을 집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 의장은 "콜센터 대부분이 정량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운용한다"며 "개인 경쟁을 부추기는 노동환경에서 감정노동까지 수행하느라 노동자들의 우울감과 스트레스 수준이 몹시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89명 중 47.6%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지난 1년 내 자살 생각을 해봤다'는 노동자도 29.9%나 됐다. 고객의 폭언 경험은 월평균 12회, 성희롱은 월평균 1회 이상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에서는 '다음 소희'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 통과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법안은 사업주가 노동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규정해 강제력을 높였다. 폭언이 3회 이상 발생하면 즉시 상담을 종료하는 '삼진아웃제'도 담았다. 곽 의장은 "국회에서 삼진아웃제를 얘기하는데, 세 번 참을 동안 노동자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해 '원스트라이크아웃제'가 필요하다"면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과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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