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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반려자, 사실혼 아니지만 본질은 같아" 평등 원칙 꺼내든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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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반려자, 사실혼 아니지만 본질은 같아" 평등 원칙 꺼내든 법원

입력
2023.02.22 00: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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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은 이성 간에만 적용" 1심 판단과 같았지만
"둘의 관계 본질, 사실혼과 같아... 차별 대우 안 돼"
법조계 "평등 원칙 내세워 소수자 권리 확대"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서로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서로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서울고법 '동성 결합 상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관련 항소심 판결 中

법원은 21일 동성 반려자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을 내세웠다. 두 사람이 정서적·경제적으로 의지하는 등 사실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관계라면, 이들을 행정적으로 차별할 수 없다는 취지다. 형식상 사실혼 성립 여부를 살펴본 1심 판단과 달리 '실질적 동일성'을 따졌다는 점에서 진일보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 "사실혼 아니지만, 동거·부양·협조·정조 등 본질 같다"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가 소성욱(32)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소씨 손을 들어주면서, 소씨와 함께 사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 김용민씨를 소씨의 건강보험 부양자로 인정할 수 있게 됐다.

1심 법원은 지난해 1월 소씨와 김씨가 2019년 대외적 의식을 치르고 함께 살아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사실혼 관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범위에 사실혼이 포함되지만, 현행법상 사실혼은 일반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성 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므로, 소씨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항소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소씨와 김씨를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두 사람의 삶의 본질에 주목했다. 소씨와 김씨가 동성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이들의 관계는 사실혼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 관계에서 ①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에 대한 상호 동의 ②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의 실체가 인정된다고 봤다.

"같은 것 다르게 대우... 성적 지향은 차별 이유 안 돼"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대우했다"며 이를 '차별대우'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건보공단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에 마땅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동성 반려자와 사실혼 배우자를 다르게 대우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건보공단은 구체적인 주장이나 입증을 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결국 건보공단이 합리적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차별대우를 했으며, 이는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못 박았다.

법조계에선 동성 반려자의 법률상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평등 원칙을 내세워 이들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판사 출신인 박해식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동성혼 법제화와 직결되는 판결은 아니지만, 권리 확대 측면에선 논의의 범위를 상당히 넓혔다"며 "다만 유사한 사례마다 법원이 삶의 본질과 동일성을 어떻게 적용하고 판단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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