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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역설

입력
2023.02.1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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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지난해 여름 개봉한 '헤어질 결심'은 영화의 명성에 힘입어 평범하지 않은 제목 자체가 많은 이의 추종(?)을 받았다. 아직도 신문 기사에는 그 흔적이 남아 '무기력증, 변화할 결심', '아이 낳을 결심, 그 후', '담배와 헤어질 결심이라면'과 같은 제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결심이란 마음처럼 되지 않기에 제목을 그리 지었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4년제 대학 30%, 등록금 인상할 결심'과 같이 확정된 계획을 가리킬 때도 응용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학들의 고민의 흔적이 돋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영향은 제목뿐만 아니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중국인 주인공의 대사에서 '마침내'는 묘한 이질감을 주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구어보다 문어에서 많이 쓰이는 '마침내'는 선행 과정이나 상황이 전제된 경우가 많다. 중국인의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영리한 감독의 설정임을 눈치챈 관람객은 의심 가는 대사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차례 등장한 '마침내'는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누리소통망(SNS)의 문장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에서는 개봉 후 '마침내'의 언급량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같은 기간 '드디어', '결국'은 언급량이 줄었다니 '퇴근하는구나, 마침내(드디어)', '떨어졌구나, 마침내(결국)'처럼 문맥의 자연스러움에 관계없이 '마침내'를 의도적으로 쓴 것이다.

어찌 보면 한 시대의 유행이고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소소한 재미일 수 있지만 조심하라, 당신의 진심이 의심받을 수 있으니.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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