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지진 피해 현장서
"이런 규모 재난 대비는 불가능하다" 언급
'정부 대응 비판' 확산 트위터, 한때 접속 차단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지진 피해 현장에서 “이런 재난에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발언해 여론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강진 발생 이후 튀르키예 당국의 대응 속도를 두고 ‘너무 느리다’는 불만이 큰 상황에서, 마치 정부 책임을 회피하거나 줄이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 탓이다.
게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대중의 분노가 퍼지자 서버 접속이 차단되는 일도 빚어졌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두고 튀르키예 정부가 ‘여론 통제’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 20년간 집권하며 ‘21세기 술탄’으로 불린 그의 리더십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N방송ㆍ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州)의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다. 6일 발생한 강진 피해가 가장 큰 곳 중 하나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국 대응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점이 있긴 하나, 이렇게 커다란 재난에 대비돼 있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구조작업 지연, 부실시공 건물의 붕괴 등을 두고 ‘정부 책임론’이 비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CNN은 “국가는 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정부가 하는 일 없이 돈을 거둬가고 있다” 등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영국 BBC방송도 튀르키예 국민들이 “그간 지진 대비를 하긴 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만의 초점은 20여 년간 거둬 온 ‘지진세(earthquake tax)’로 향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지적이다. 1만7,000명 이상 사망한 1999년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트 대지진 이후, 당국은 지진 예방ㆍ대응 역량 강화를 하겠다며 ‘지진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진세의 구체적 사용 내역은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BBC는 현재까지 880억 리라(약 5조9,000억 원)가 징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정부의 부실 대응 비판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튀르키예 당국이 이날 트위터의 국내 접속을 차단하는 일도 발생했다. 정부는 “단순 기술 문제”라고만 밝혔으나, 확산 속도가 빨라 재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종종 쓰이는 트위터 접속이 끊기면서 일부 지역에선 구조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 차단은 이튿날 새벽 해제됐다.
또 SNS에 정부의 재난 대응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23명이 경찰에 체포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튀르키예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나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셜미디어 접속을 제한했다. 작년 10월 게시자 정보를 제공받는 법안도 통과시켜 검열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지난해부터 지지율이 하락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리더십도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라시아그룹 싱크탱크의 엠레 페커 유럽 국장은 “에르도안은 대형 재해에 강단 있고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떨어진 인기를 회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1999년 대지진(1만7,000명 이상 사망) 당시 부실 대응을 했던 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주장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2003년부터 20년 동안(총리 시절 포함) 장기 집권을 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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