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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된다는 것의 의미

입력
2023.02.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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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뉴시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뉴시스

“내가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후배들 참 걱정된다.”

최근 만난 검찰 간부 출신 법조인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검찰 밖에서 친정을 바라보니 내부 부조리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조직 논리와 성과주의, 출세 욕심에 무리한 수사를 많이 하고 있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대놓고 욕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얘기도 있었다. 검사들이 기소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기소(起訴)는 검사가 형사사건에 대해 죄를 인정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매우 생소하고 무미건조한 말이다. 물리력이 동원되는 압수수색이나 체포, 구속처럼 위압감을 주지도 않아 말 속에서 묵직함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기소된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기소만큼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벤트도 없다. 지옥문이 열렸다고 표현한 이들도 있다. 검사는 유죄추정 원칙으로 피고인을 법정에 세운다. 순식간에 일상은 파괴되고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이미 죄가 있다고 낙인찍혔기 때문에 손가락질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그것은 기소된 피고인의 업보다.

검사들에게 왜 기소하느냐고 물어봤다. 혐의가 충분하고 소송 조건이 구비됐으니 기소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소되는 순간 이미 끝난 게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피고인을 법정에 세우기 때문에 무죄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검사도 있었다. 검찰의 진짜 힘은 수사가 아니라 기소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일부 검사들은 기소를 곧 유죄로 인식해 공소장을 판결문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다.

검사들 설명대로라면 기소가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00% 유죄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들어서도 무죄로 선고된 사건이 제법 있다. 2019년 발생한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과 관련해 전신주 관리 소홀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한전 직원 7명이 1심과 같이 무죄 판단을 받았다. 불법체류 중인 태국인 마약사범 검거 과정에서 폭력 등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관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정부 고위인사들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가 확정되면 어떤 심정일까.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전직 공무원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만날 때마다 검찰 욕을 한다. 5년 넘게 재판받는 동안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파괴됐다. 재산은 사라졌고 가정은 해체됐고 건강은 망가졌다. 극단적 선택도 고민했다고 한다. 기소 안 당해본 사람은 자신의 심정을 모를 것이라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검찰 욕을 하다 생을 마감할 것 같다. 이처럼 무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반검(反檢)주의자가 된다.

그렇다면 검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100% 유죄 확신이 없으면 기소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유ㆍ무죄를 확신하지 못하면서 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기소하는 검사가 아직도 적지 않다. 검사는 공소장과 결정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무죄가 나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공소장에 이름을 남긴 검사가 져야 한다. 기소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결정이자 가장 잔인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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