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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이스탄불의 기록

입력
2023.02.02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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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지난달 1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모스크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관광객들이 지난달 1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모스크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 유 오케이?" 반대편을 지나던 경찰차가 어느새 돌아와 섰다. 새벽부터 큰 짐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니 안쓰러웠나 보다. 딱히 정해진 정류장도 없이 오가는 마을버스라 초행길 여행자는 살짝 난감한 터였다. 버스터미널로 가려 한다니 대뜸 뒤에 태우고는 길을 막는 차에 비키라고 혼까지 내면서 경광등을 울렸다. 버스를 놓칠 뻔한 외국인을 무사히 바래다줬다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경찰아저씨들, 튀르키예 사람들은 참 여전하구나 싶었다.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북적이는 이스탄불. 다정한 사람도 멋진 풍광도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것도 많았다. 술탄에게 바칠 달콤한 '로쿰'을 처음 만든 가게는 150리라던 가격표를 방문한 지 두어 시간 만에 185리라로 바꿔 달았다.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화폐 가치 때문이었다. 10년 사이 10분의 1토막이 된 환율로도 비싸다 싶은 카페에는 SNS용 사진을 찍는 현지인이 가득했지만, 한 골목만 뒤로 가면 부모와 떨어진 지 한참 된 듯한 시리아 난민 아이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 앞에는 절망적인 눈빛을 한 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친구들에게 건너 듣는 소식도 흉흉했다. 건국 100주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벌어질 5월의 대선은 극히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반대파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확장 이전하려던 약국이 문을 닫았고 권력층의 비리를 고발했던 경찰은 큰 곤욕을 겪었다고 했다. 말조심하라며 주위를 슬쩍 살피는 현지인도 늘었다. 안탈리아에서 알게 된 열일곱 살짜리 소녀는 K-POP 한류에 강한 반발심이 있는 현 정권의 분위기를 조심스레 전해 주었다. 기자가 되어 세계를 다니고 싶다는 '똘방똘방한' 눈빛 너머로 요즘 상황에선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한숨이 느껴졌다.

일개 여행자에게도 한 국가의 정치사회적 변화는 성큼 다가왔다. 박물관 지위가 취소되고 모스크로 개조한 아야소피아 입구에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이름이 가장 크게 걸려 있었다. 이슬람 예배 용도에 충실하게 바닥에는 카펫이 깔리고, 남녀 공간은 분리되어 남자들이 기도하는 동안에는 모든 여자들이 대기선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1,500년 전 성당일 때 천장에 새긴 성모상과, 무슬림이 기도할 때 향하는 미흐랍이 불행히도 같은 방향인지라, 박물관이었을 땐 누구나 볼 수 있던 모자이크 성화 걸작들은 천으로 가려졌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니 "레이디, 노!" 절레절레 손을 흔들었다. 이제 미흐랍 근처는 종교 상관없이 남자들만 갈 수 있는 구역. 네덜란드에서 온 여성 관광객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내가 제지당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진을 찍던 남편은 나중에야 상황을 알아채고 돌아와 어깨를 으쓱했다.

이스탄불이 왜 그리도 특별한지 물을 때면,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아시아와 유럽 두 개 대륙을 떠올렸었다. 낯선 만남과 연결, 이질적 문화의 뜨거운 융합을 대변하던 이스탄불이 달라지는 걸까? 이제 아야소피아에서는 하나의 목소리만 들린다. 2023년 이스탄불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내고 싶은 목소리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천 년의 시공간이 겹치고 겹쳐 한없이 오묘했던, 여러 목소리가 웅웅 울리며 심장을 건드렸던 가슴 벅찬 감동은 당분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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