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2~23 V리그 인삼공사와 도로공사의 경기에선 이례적인 장면이 나왔다. 올 시즌 팀의 미들블로커로 등록한 베테랑 한송이(39)가 1세트 후반 아웃사이드 히터로 교체 출전해 공격으로 3득점을 올렸다. 그러더니 2세트부터는 힘이 떨어진 후배 박은진을 대신해 ‘본업’인 미들블로커로 나서 블로킹 1득점, 속공 2득점 등 5득점을 올렸다. 불혹을 앞둔 베테랑이 한 경기에서 아웃사이드 히터와 미들블로커 두 개 포지션을 소화한 것이다.
분업이 확실해지고 있는 최근 배구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송이의 ‘이도류’는 인삼공사 사령탑의 고민이 묻어난 결과다. 인삼공사는 올 시즌 정호영-박은진으로 미들블로커 라인을 꾸렸고, 한송이는 동생들이 흔들릴 때 교체 선수로 들어가 중앙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문제는 인삼공사의 아웃사이드히터 한 자리에 빈틈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소영의 대각을 메워 줄 공격력과 높이(블로킹)를 동시에 갖춘 카드가 만만치 않았다. 이에 고희진 감독은 한송이를 ‘전위용 아웃사이드 히터’와 ‘교체 미들블로커’로 동시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장 186㎝의 한송이는 높은 블로킹뿐만 아니라, 공격력과 리시브도 가담하며 팀의 고민을 덜어내고 있다.
2002년 입단(전체 1순위)해 21시즌째를 맞는 한송이는 한때 국내 정점을 찍었던 아웃사이드 히터다. 전성기였던 2007~08시즌부터 2014~15시즌까지는 매 시즌 400득점을 넘나드는 득점력에 공격성공률도 40% 안팎, 리시브효율도 35~40%에 달하는 공수 겸장이었다. 2007~08시즌엔 김연경(흥국생명)을 제치고 여자부 득점 1위(28경기 692점)에 올랐고, 2012 런던올림픽에선 국가대표 주전 레프트로 4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9~20시즌부터 체력 문제로 미들블로커로 전향했지만 날개 공격력은 아직도 웬만한 후배 공격수 못지않다. 실제로 표본은 적지만 올 시즌 공격성공률 37.0%, 리시브효율은 25.7%로 준수하다. 이날 팀은 도로공사에 0-3으로 완패했지만, 한송이의 존재감은 빛났다. 고희진 인삼공사 감독도 한송이에 대해 “고마운 존재다. 잘 준비했고 팀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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