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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心, 明心에만 기대는 정치라면

입력
2023.01.1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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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진짜 문제는 공천권에 목매는 정당체제
국가, 민생보다 주군 의중 살피기 급급
선거제보다 정당구조 바꾸는 게 더 절박

선거구제 개편은 쳇바퀴 논의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인 승자독식 구조와 지역정당화, 양당 대결정치, 다양성 봉쇄 등을 뒤집으면 그대로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이 된다. 인물과 정견 난립으로 인한 상시적 정국불안, 나눠 먹기에 고인 물 정치 따위다. 화두를 던진 윤석열 대통령도 뒷얘기가 없는 걸로 보아 원내 세(勢)불리와 대결정치에 대한 염증 정도의 표현이었던 듯싶다.

실현 가능성도 적다. 가장 진지했던 선거구 개편 논의가 21대 총선을 앞둔 4년 전 일이다. 지역구를 확 줄이고 비례대표를 확대해 민의를 다양하게 반영하겠다던 결과는 아는 대로다. 지역구는 온존되고 비례대표는 도리어 줄었다. 대신 준연동형제 악용으로 역대 최악의 꼼수 선거판이 됐다. 지역구 희생을 감수할 의원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상돈 교수가 최근 글에서 못을 박았다. ‘의회 정치를 이토록 타락시킨 당사자들이 엉뚱하게 소선구제 탓을 한다. 한국정치의 당면 과제는 제도개혁보다 인적쇄신’이라고. 100% 공감한다. 인적쇄신을 가로막고 정치판을 ‘그들만의 놀이터’로 만드는 것은 '윤심(尹心), 명심(明心)’ 하는 주군(主君)의 의중에 기대는 정치다.

친윤 대표 만들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는 요즘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집권정당이라고 하기 민망할 지경이다. 18년 전 비장한 명분으로 만든 경선 룰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독하게 '이지메'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윤심 아닌 이들의 당권 도전을 막기 위해서다. 오해 말기 바란다. 인물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절망적인 건 50명 초선 의원들의 집단행동이다. 극단적 표현으로 일관한 그들의 성명은 ‘제 뜻은 그게 아니라…’ 식의 소심한 변명에 대한 반응으론 크게 지나쳤다. 막판 2명은 경선 공정관리 책임까지 내던졌다. 막 정치판에 발 들인 새내기들의 도 넘은 충성경쟁에서 무슨 새로운 정치의 단초나마 기대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쪽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리 용쓴들 민주당이 이재명의 늪을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은 나날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윤 정부에 대한 합당한 비판조차도, 민생 외침도 다 이재명 구하기의 얕은 수로 비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답한 소수가 조심스럽게 당과 대표 리스크의 분리를 언급하는 순간 적군 편드는 해당 행위로 매도된다. 앞장서 결사옹위에 나서든지 아니면 조용히 입 닫고 순응하든지 두 길밖에는 없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의 앞날이 뻔히 보이는데도.

양당 의원들의 이런 초라한 모습들이 주군이 틀어쥔 공천권 때문이라는 건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겠다. 상투적 인용을 꺼리는 편이지만 이쯤에선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찌감치 직업정치인을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에 의존해 살아가는 두 부류로 분류한 것은 그의 감탄할 만한 통찰이다. 전자는 가치 실현을 위해, 후자는 생계 수단으로 정치인 직업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국가와 민생보다는 오직 자신의 직업적 안위가 우선인 우리 태반의 정치인들이 어떤 부류에 속할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그나마 현재의 우리 정치로는 안 되겠다는 일말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만 긍정적이다. 그러나 핵심은 공천권을 가진 주군의 의중에 목매는 생계형 정치문화의 타파다. 그래야 인적쇄신의 길도 열린다. 선거제도가 아니라 정당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의 지적(본보 18일자)은 그래서 타당하다. ‘직장인으로서의 정치’를 조장하는 현 정당체제에서 국가와 민생은 영원한 후순위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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