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치부터 파괴하라

입력
2023.01.18 04:30
수정
2023.01.18 09:56
24면
0 0

<1>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 상

편집자주

2023년 대한민국 국력은 교차점에 있다. 과거의 성취를 모은 오늘의 국력은 단군 이래 정점에 섰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인구통계, 사회갈등 등 현재의 변화를 추적하면 미래는 암담하다. 성취를 지키고 밝은 미래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원로 5인의 냉정하지만 따뜻한 조언을 5회에 나눠 소개한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정덕구(75) 니어재단 이사장은 ‘자의 반 타의 반’ 대한민국의 다양한 새 길을 모색해온 인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 경제의 새 길을 놓고 담판을 벌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다 2004년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돌연 2년 만에 의원직을 던지고 민간 싱크탱크(니어재단)를 만들어 원래 전공인 경제를 뛰어넘어 정치ㆍ사회까지 아우르는 국가전략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22일 니어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15명 원로와 8명 현직 교수들의 토론 내용을 담은 '한국의 새 길을 찾다'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정치분야 10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2일 니어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15명 원로와 8명 현직 교수들의 토론 내용을 담은 '한국의 새 길을 찾다'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정치분야 10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2022년은 우리 사회 원로들의 지혜를 묶어 대한민국의 새 길을 찾는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김성수, 이홍구, 이종찬, 김진현, 김병익 등 원로들의 조언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대한민국 발전 청사진을 만들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래’를 주제로 15명 원로와 8명 현직 교수가 나선 세미나를 열었고, ‘한국의 새 길을 찾다’는 단행본도 내놨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만만찮은 분량인데도, 정치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묻는 시리즈를 정 이사장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국력은 커지는데 국민은 힘든 '이상한 나라'

_한국 사회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진단해 주신다면.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한쪽에서 보면 세계 6위(US월드&리포트의 국력 평가)다. 프랑스와 일본을 제쳤다. 국방부문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내부는 그렇게 잘나가는지 모른다. 왜 잘나가는지도 모르고, 체감하지도 못한다. 국가 전체의 국력을 위한 축적은 많은데, 국민을 위한 축적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기 좋은 국가’ 순위에서 우리는 15등을 했다가 20등으로 밀려났다. MZ세대에 대해 말한다면, 아주 특출한 애들은 세계 최강이 되었지만 ‘비창조적 다수’에 해당되는 평범한 사람들은 힘든 상황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_서구 선진국 상황은 어떤가.

“서구 사회가 일본까지 포함해서 무너지고 있다. 늙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반해서 위기에 빠졌다. 자유라는 것이 성장이나 생산성을 보장해 주지 않고, 그 나라 사람들은 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따지고 보면 해외에서는 겉만 보고 우리가 엄청 잘하는 것처럼 보고 있다. 우리도 ‘장기 정체기’에 들어갔는데, 국력 측면에서 세계 6위와 7위로 올라서는 것도 서구의 이런 침체 때문이다. 우리가 서구보다 강한 것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낮은 정치·사회 생산성이 초래한 한국 사회 이중구조

_우리 사회의 이중구조와 관련, 주목할 점은 뭔가.

“원로들이 주안점을 둔 건 세 가지다. 하나는 ‘세계가 모두 한국을 강국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다. 두 번째는 ‘한국이 강국인데,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자살을 많이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는 ‘왜 분열 공화국이 됐느냐’다. 이 세 가지를 놓고 진정한 우리 민낯을 찾으려 했다. 결론은 이 세 가지 모두 정치ㆍ사회 비용으로 수렴되고 있으며, 정치ㆍ사회 비용이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치ㆍ사회 비용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선진 도상국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진국인데도 계속 뒷다리를 잡는 요인들을 말한다.”

_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우리는 정치ㆍ사회 생산성 또는 사회적 안정성 또는 정치적 생산성 이런 것들이 국제 기준으로 바닥이다. 전 세계에 우리 같은 나라가 없다. 예를 들어 중요한 법안이 나왔지만, 의회가 제때 심사를 안 하면 정책 프로세스 생산성이 나쁘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세계에서 절반 수준에도 못 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정치 정책 프로세스’ 생산성이 바닥권이다. 사회가 단층화되는 것도 우려된다. 재벌은 재벌끼리 결혼하고 영화 보고, 여행 가는 현상이 강해진다.”

개헌과 공천권 개혁 등 정치의 창조적 파괴 시급

_낮은 정치 생산성의 해결책은 뭔가.

“창조적 파괴가 해결책인데, 그 출발점은 개헌이다. 개헌이 모든 걸 해결하지 않지만, 개혁의 신호탄을 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개헌과 함께 정당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당수가 공천을 쥐고 흔드는 걸 없애야 한다. 국민 50% 이상이 아직 대통령제를 원하지만, 이대로 가면 대통령제를 하더라도 정치ㆍ사회적 비용 때문에 나라가 위태롭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권한을 줄여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내치는 철저하게 내각에 맡기는 방식이다. 대신 정당제도를 바꿔, 당수가 당을 이끌지만 공천권을 포기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지역 유권자가 직접 선출직 후보를 뽑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방식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역시 실패한다. 대표가 공천권을 모두 행사하는데 중대선거구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양당이 호남과 영남을 나눠 갖는 형국은 똑같다. 그러나 (공천권이 배제된) 오픈 프라이머리로 가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_우리 정치수준을 평가한다면.

“정치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인물 생태계가 파괴됐다. 인물 생태계의 파괴는 당수가 마음대로 공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당수(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는 좋은 인물을 많이 영입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당수를 한다. 그런 당수는 말 잘 듣는 사람만 공천한다. 그래서 정치권의 인물 생태계가 파괴된 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처럼 똑똑한 인물이 정치권에서 견디지 못하고 쫓겨난다. 우리 정치생태계는 인물생태계와 동반해서 파괴되고 있다. 살아야 될 것은 죽고, 죽어야 될 것은 살아남는 ‘좀비형 생태계’가 된 셈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_개헌의 구체적 방법론이 있다면.

“개헌의 적기는 총선 직전이다. 개헌을 걸고 총선을 하는 방법이다. 총선이 지나고 나면 시기적으로 개헌 논의를 하기 어렵다.”

_(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정리하자는 것인가.

“국민 대부분이 87년 체제 극복에 동의한다. 개헌을 통해 정치생태계를 싹 바꾸는 것이다. 물론 개헌만 해선 안 된다. 공천제도, 정당제도, 선거제도, 국회체제 전반을 바꾸고 정치생태계, 인물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이게 바로 창조적 파괴의 기본 골격이다.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활력을 잃게 된다. 다만 1987년에는 혁명적 방법으로 개헌을 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결심하고 국민들이 호응하는 방식으로 정치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역할 끝난 민주화 세대 퇴장, 세대교체 이뤄져야

_산업화ㆍ민주화 세대가 젊은 세대에 양보해야 한다는 주문도 하셨는데.

“산업화ㆍ민주화 세력은 2000년 무렵에 임무를 완수했다. 그런데 일부 세력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서 분탕질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제 그런 사람들은 꼭 MZ세대일 필요는 없지만, ‘선진국 세력’에 넘겨야 한다. 개발연대의 교육을 받아서 트라우마와 과거에 대한 집착에 빠진 세대는 이제 안 된다. 그들로는 선진국으로 못 간다. ‘고생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모세에 대해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마라’고 한 성경 구절은 심오한 뜻을 갖는다. 개발연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뭘 해놨다고 해서 그걸 갖고 누리거나, 사회를 끌고 나가길 바라면 안 된다. 이제 30대 젊은 세대에 맡겨 놓고 칭찬하고 북돋아 주기만 하면 된다.”

잔인한 경제 위기 속, 정부가 희망 메시지 줘야

_올해 한국 경제 전망은.

“잔인한 한 해가 될 것 같아 걱정이다. 2010년이나 대공황 등과는 다른 중기적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전쟁이나 충돌 등 공급라인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클리어’가 안 되면 세계 경제가 굉장히 잔인한 침체의 길을 갈 수 있다. 다만 그 요인만 없어지면 금방 회복될 수도 있다. 요컨대 2024년 후반, 혹은 2025년 세계경제 회복기에 우린 뭐 할 거냐를 논의해야 된다는 얘기다. 그런 논의에는 연금개혁도 있고 노동개혁도 있고 교육개혁도 있다. 다만 (회복기가 오기 전까지는) 경제주체들이 참고 견뎌야 되는데, 참고 견디려면 정부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

정덕구 이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IMF 교섭과 외채협상 등을 주도했다. 산업자원부 장관 때는 부품소재, 중간재 등 산업구조개편에 힘썼고 17대 의원을 지냈다. 2007년 독립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을 설립, 한반도 미래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외환위기 징비록’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극중지계 1, 2’ 등이 있다.

글 싣는 순서

1.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2.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3.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4.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5.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