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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남성'들이 홀로 영화관에… 이들은 왜 슬램덩크에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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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남성'들이 홀로 영화관에… 이들은 왜 슬램덩크에 열광하나

입력
2023.01.12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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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향수' 강백호 '성장'에 환호
3040세대 80%… 1인 관객 유독 많아
"억눌린 대중문화 욕구 발산 기폭제"

1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이서현 기자

1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이서현 기자

“고교 시절 야자(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슬램덩크 만화책을 돌려 보던 때가 생각났어요. 이 나이가 돼서 그 만화영화를 다시 보러 올 줄 몰랐네요.”

41세 남성 유모씨는 10일 오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홀로 관람했다. 출근을 늦춰가면서까지 평일 조조 시간을 택했다. 유씨는 “친구들이 하도 봐야 한다고 추천해 아침 일찍 나왔다”며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명작”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농구 붐을 일으켰던 일본 만화 슬램덩크가 2023년 되살아났다.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자 성장기 향수를 느끼려는 관객들로 영화관이 꽉꽉 들어차고 있다. 11일 기준 누적 관객은 50만1,864명으로 박스오피스 2위를 찍었다. 자막판, 더빙판을 모두 챙겨보는 ‘N차 관람’은 기본이고, 다시 만화책을 사서 읽거나 주제곡(OST)을 찾아 듣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

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열풍의 중심에는 3040세대 남성이 있다. 취재진이 이날 찾은 CGV 용산과 왕십리엔 평일 아침치곤 관객들이 제법 많았다. 오전 9시 40분 CGV 용산의 한 개봉관은 154석 객석의 3분의 1이 찼는데, 대부분 30ㆍ40대 남성들이었다. CGV 연령별 예매 분포를 봐도 30대가 43.7%, 40대가 35.2%로 3040세대 점유율이 78.9%에 이른다. 남성 비율도 63.1%다. 3040이 55.3%, 여성 관객이 55.3%인 ‘아바타: 물의 길’과 확연히 대비된다.

홀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도 유독 많다. 1인 관객 비중은 34.7%로 아바타(12.5%)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높았다. 개봉 첫날인 4일엔 1인 관객이 절반(49.8%)에 육박하기도 했다.

2023년판 슬램덩크가 이들을 사로잡은 키워드는 ‘향수’와 ‘성장’이다. 농구에 문외한이던 주인공 강백호가 전국 강호 격파의 주역이 되는 스토리 라인은 세상사에 지칠 나이가 된 3040세대의 감성을 지금도 자극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를 4번이나 봤다는 김모(43)씨는 “아내에겐 비밀로 연차를 내고 극장에 왔다”며 “고등학생 때 워낙 재미있게 만화를 감상해 안 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모(38)씨도 “한참 슬램덩크에 빠져 농구화를 사 모았던 기억이 난다”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애틋한 감정마저 든다”고 했다. 만화책 전권을 소장 중이라는 주모씨는 “주인공이 최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고 평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NEW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NEW

3040세대 남성이 독자적 문화현상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잠재력을 갖추고도, 급격한 사회ㆍ경제적 변화에 밀려 분출할 기회를 놓친 점에서 원인을 찾는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1970ㆍ1980년대생들은 고도성장의 혜택을 받은 마지막 세대지만 취업난 등 경제 위기를 겪으며 사회적으로 많이 위축됐다”고 짚었다. 일본문화 개방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아 축적된 문화적 감수성을 스스로 억제할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슬램덩크는 그 시절의 감수성을 건드린 깜짝 기폭제가 됐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3040 남성들에게는 우울감이 내재돼 있다”며 “희망의 기억으로 남은 슬램덩크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도형 기자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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