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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로 끝난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 사망보험금 57억

입력
2023.01.18 13:00
수정
2023.01.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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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재판 끝에 대법서 남편 '무죄'
졸음운전 아닌 살인? 입증 실패
남편, 승소 뒤 사망보험 95억 소송
1심 결과 '8승 3패'... 57억 인정돼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A씨와 B씨의 차량이 2014년 8월 23일 갓길에 정차해 있던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충남경찰청 제공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1분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인근. A(당시 45세)씨와 임신 7개월 차 캄보디아 국적 아내 B(사망 당시 24세)씨가 탑승한 승합차가 시속 60~70km로 달리다가 갓길에 정차해 있던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승합차 우측 전면부 3분의 2가 완전히 찌그러질 만큼 큰 사고였다. B씨는 현장에서 사망했지만, A씨는 경미한 부상만 당한 채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이후 "교통사고를 위장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A씨를 체포했다"는 뜻밖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사고 당시 고속도로 폐쇄회로(CC)TV를 보면 "졸음운전"이라는 A씨 주장과 달리 차량이 충돌 직전에 상향등을 켜고 화물차 위치를 확인한 듯한 정황이 있는 데다, 'B씨 사망보험금이 거액'이라는 보험사 직원들의 제보도 있었다.

검찰 "보험금 95억 때문에 살인"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 연합뉴스

검찰이 경찰 수사를 토대로 파악한 '사건 전말'은 치밀하고 끔찍했다. ①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A씨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수면유도제를 몰래 먹인 뒤 안전벨트를 풀었고정차된 화물차를 발견하고 상향등을 켜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뒤 ③의도적으로 차량을 조작해 조수석 부분을 들이받아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살해 동기로는 '사망보험금'이 지목됐다. A씨가 ①2008~2014년 '수익자 A씨·피보험자 B씨'로 11개 보험회사에 생명보험 25개를 가입했고 ②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사망보험금 95억 원을 받으려고 교통사고를 위장해 아내를 살해했다는 취지였다. A씨가 아내 B씨 몫으로 매달 납부한 보험료만 360만 원에 달했다.

A씨 측은 "A씨가 사고 전날 새벽부터 사고 당시까지 21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며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라며 맞섰다. 보험을 25개나 가입한 이유에 대해선 "고객이었던 보험설계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월수입 등으로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무기징역→무죄... 법원 "졸음운전 사고"

A씨가 보험금을 타내려면
자신은 반드시 살고 아내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1심 판결문

수사기관의 기소 내용과 달리 1심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고의 살인'에 무게를 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고속도로 CCTV 영상 화질이 좋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A씨가 졸음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상향등 점등에 대해서도 "A씨가 졸다가 점등장치를 잘못 건드리고 작동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망보험금도 범행 동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①A씨의 월수입이 1,000만 원에 달하는 등 재산 상황을 보면 보험료를 수백만 원씩 납부하고도 충분히 생활을 유지했고A씨가 자신을 피보험자로 둔 보험계약도 다수 체결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은 무죄 판결을 받자 항소심에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망(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를 추가했다.

항소심은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과수의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증거로 채택한 뒤, A씨가 인위적으로 차량을 조작해 B씨를 살해한 게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①A씨 차량의 상향등이 사고 직전 켜졌고 ②차량이 우조향→좌조향→우조향을 거쳐 화물차를 충돌했고 ③수동변속기가 6단에서 4단으로 변경된 사실 등이 졸음운전을 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A씨의 범행 동기도 인정했다. A씨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나 경제적 상황 등과 상관없이 B씨 사망으로 95억 원을 받을 수 있다면 살해 동기가 충분히 생긴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사고 발생 두 달 전에 B씨를 피보험자로 30억 원짜리 사망보험에 추가로 가입한 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대법원은 그러나 다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①졸음운전 도중 상향등 조작 장치가 작동될 가능성 등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고 ②사고 CCTV 영상과 국과수 시뮬레이션 결과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사실 등을 근거로 "졸음운전으로 사고 상황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범행 동기 또한 설득력이 있지 않다고 봤다. ①A씨가 재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악성 부채를 부담하고 있지 않았고 ②A씨의 범죄성 또는 반사회성이 부족한 점 등을 토대로 "A씨가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임신 7개월인 아내를 살해하는 범행을 감행했다고 보려면 동기가 좀 더 선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범행 수법에 대해서도 "A씨의 생명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건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에선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대법원 판단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파기환송심은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망 혐의만 인정해 A씨에게 금고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2021년 3월 파기환송심 판결을 확정하며, 법정 공방은 6년여 만에 '만삭 아내 살인'이 아닌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마무리됐다.

보험금 소송은 계속... 현재까지 '8승 3패'

그래픽=송정근 기자

무죄가 확정되자 A씨의 보험금 소송도 잇따라 결론이 나왔다. 현재까지는 11전 8승 3패로 A씨가 승소한 경우가 많았지만, 모두 승소하진 못했다. 재판부는 일단 무죄가 확정된 이상 ①보험계약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고 ②고의 살인이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험사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캄보디아 출신인 A씨의 아내가 보험 계약을 제대로 이해하고 서명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판단이 갈렸다. B씨의 한국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A씨 측 손을 들어준 재판부는 "계약 체결 당시 B씨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보험모집인 증언 등을 토대로 "B씨가 보험계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자필로 서명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A씨의 청구를 기각한 재판부는 "B씨가 보험계약 체결 내용을 이해하고 진정한 의사로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어 능력도 부족한 B씨 같은 사람을 피보험자로 하는 생명보험계약 체결에 있어선 보험사가 모국어로 된 약관을 제시하거나 통역하는 방식으로 피보험자의 진정한 동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보험자 동의 여부를 판단하는 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1심 판결 결과만 놓고 보면, A씨와 그의 자녀가 보험사로부터 받을 보험금은 총 57여억 원이다. 메리츠화재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1억4,000만 원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에선 승소가 확정됐고, 나머지 재판에선 아직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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