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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시위는 유난하고 이기적?' 국제사회 답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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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시위는 유난하고 이기적?' 국제사회 답은 "아니오!"

입력
2023.01.06 09:5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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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보장 선진국 역사엔 '전장연들'
'100% 완벽' 불가능하지만 꾸준한 개선 노력
시민 연대의식·정부 책임감이 문제해결 '단초'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선전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오는 19일까지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뉴스1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선전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오는 19일까지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뉴스1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운행을 가로막고, 정부와 서울시는 전장연을 가로막는 '극한의 대치'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전장연이 열차 운행 지연 시위를 하는 건 그래야 장애인 이동권이 열악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장연이 왜 극단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가를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위가 비장애인의 불편과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는 결과에만 집중한다.

전장연 시위는 정말 이기적이고 유난한 걸까. 반복되는 갈등과 대치가 전장연의 잘못일까. 국제사회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4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통한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 교육권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손에 '시민권 열차에 탑승을 원한다'고 적힌 쪽지가 들려 있다. 뉴스1

4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통한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 교육권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손에 '시민권 열차에 탑승을 원한다'고 적힌 쪽지가 들려 있다. 뉴스1


장애인 이동권 선진국… '전장연들'의 투쟁 성취

인권을 공동체 존재 이유로 보는 유럽연합(EU)은 27개 회원국과 잠재적 회원국이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하도록 각종 법률로 규제한다. EU의 관련 법은 "장애인은 항공, 기차, 버스, 배 등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교통수단마다 특화한 '장애인 탑승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독일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 이동권 개선 책임을 더 강하게 지우고 있다. 점자·음성 안내 확대, 교통수단·정류장 시설 개선 등이 지자체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영국에선 거의 모든 버스를 장애인들이 타고 내리기 쉬운 저상 버스로 교체했다. 해변 모래사장에까지 휠체어용 보행로를 설치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일본은 일일 승객 3,000명 이상인 철도역 95%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정부가 100만 엔(약 959만 원)의 지원금을 택시 회사에 지급하고 휠체어용 택시로 바꾸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미국도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미국장애인법'(ADA)을 토대로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를 늘려가고 있다. '인권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중국조차 장애인 인권만큼은 국제사회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역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중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역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이러한 선진 사례들은 과거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가 '이동권 보장'을 쟁취한 결과다. ADA는 1978년부터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장애인들이 버스 운행을 막은 것을 시작으로 십수 년간 싸운 끝에 입법을 관철시켰다. 일본이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쏟게 된 계기도 1977년 장애인 단체가 가와사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점거한 것이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전장연들'이 이동권 증진을 위해 각종 시위와 소송을 통해 투쟁 중이다.

선진국도 '완벽'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연대'

선진국과 선진 도시의 제도도 완벽한 건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건설된 기차역 등에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등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대도시와 소도시 간 인프라 격차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한국처럼 '극한의 대치'가 벌어지지 않는 건 전장연처럼 거칠게 투쟁하지 않아도 장애인 이동권 개선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싸우지 않더라도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권리"라고 보는 정부의 책임감과 시민들의 연대의식이 사회 전반에 넉넉하게 흐르는 덕분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지하철 6호선 대흥역에서 본보 기자가 수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중 휠체어 리프트가 중간에 멈춰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7월 서울 지하철 6호선 대흥역에서 본보 기자가 수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던 중 휠체어 리프트가 중간에 멈춰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국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 EU는 장애인 이동권 관련 법을 주기적으로 보완한다. 2010년부터는 매년 우수 도시에 상을 준다. 장애 정도와 필요한 지원 사항을 적은 'EU 장애인 카드'를 발급해 장애인이 EU 회원국 어디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독일에선 버스∙열차 기사가 장애인 이동을 돕느라 운행을 멈추는 일이 많은데, 시민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의무를 위배했다"며 고속버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장애인들에게 배상금을 준 적도 있다.

한국이 퇴행하는 사이 많은 국가가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향해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도쿄 최진주 특파원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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