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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간접 살인'이 된 악플

입력
2023.01.04 04:30
수정
2023.01.04 11: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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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일반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허재경 기자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일반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허재경 기자

처음엔 귀부터 의심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 녹사평역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인근 카페에서 만난 유가족들로부터 들려온 얘기는 충격에 가까웠다. 고 박가영(20)씨 모친인 최선미(49)씨가 내민 스마트폰엔 희생자의 주검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지목,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악성 댓글(악플)이 담겼다. 인터넷상에서 활개를 치는 악플로 유가족의 억장은 또 한번 무너진 듯했다.

“얼마 전에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공중파 방송을 생중계한 유튜브에 달린 댓글”이라고 전한 최씨는 “이 악플러는 방송 도중에 시간 차이를 두고 계속해서 동일한 악플을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올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 동석한 고 정주희(30)씨 모친 이효숙(61)씨 또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악의적인 댓글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악플 때문에 인터넷 자체를 쳐다보기도 싫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가 도를 넘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겨진 인터넷 악플들이 독버섯처럼 기생하면서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도 악플 테러에 대한 고통을 가장 먼저 호소하고 있다. 이씨는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악플들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젠 오프라인상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겨났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악플 테러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지난달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고교 1년생이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 고교생의 모친은 “’연예인 보려고 놀러 가서 그렇게 다치고 죽은 거 아니냐’ 등으로 죽은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아들이)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며 “댓글을 보고 그냥 거기서 무너졌던 것 같다”고 악플에 예민했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부는 지난 3일 이 고교생도 이태원 참사 공식 희생자로 인정했다. 악플은 ‘손가락 간접 살인’이란 게 입증된 셈이다.

유가족들의 속은 갈수록 타들어 간다고 했다. 최씨는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어떠한 조치를 받았는지, 너무나 알고 싶은데 아직도 모르고 있다”며 “이 마당에 지금 우리가 악플에 시달려야 되겠느냐”며 울먹였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악플은 여전히 난무한 상태다. 지난달 28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의도적인 비방과 신상정보 유출 등 위법행위 36건을 수사해 8건(8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게시물 564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차단 요청했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만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이후, 50일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온라인상에선 악플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이날 분향소 현장에서 한 해의 마무리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이어진 오프라인 추모 행렬과는 대조적인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말미에 “작년 10월 29일 이후, 우리에겐 시간이 멈춰 섰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유가족들의 간곡한 부탁은 절절한 울림으로 남았다. “끝도 없이 캄캄한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느낌입니다.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악플은 제발 멈춰 주세요.”

허재경 이슈365팀장

허재경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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