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계경제 대응] <3> 빚
금리 상승·주택 거래 실종에 대출 주춤
"이자 너무 올라" 가계대출 축소 본격화
'총량 중심' 부채관리 기조 변화 움직임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에 보험 해지환급금을 보탠 2,000만 원을 탈탈 털어 마이너스 통장(신용대출)에 넣었다. 개설 때보다 금리가 두 배 가까이 뛰어 연 7%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만만한 비상금 통장처럼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이자가 너무 올라버렸다”며 “조금 무리해서라도 빨리 갚고 아예 해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대표되는 ‘돈 잔치’ 열풍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오히려 “빚 갚는 게 재테크”라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가계대출 잔액이 통계 작성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ㆍ부채 축소)’ 시대 초입에 선 것이다.
가계대출 뒷걸음질... 18년 만에 마이너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0월 기준 902조6,670억 원으로, 지난해 12월(910조1,049억 원)보다 7조4,379억 원 줄었다. 저축은행ㆍ상호금융 등을 포함한 전체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역시 지난해 말 1,261조4,859억 원에서 10월 1,251조8,047억 원으로 9조6,812억 원 감소했다.
연말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연도별 증감을 확인할 수 있는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연말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 말보다 줄어드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동안 가계 빚은 디레버리징 없이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은행권 가계대출은 잔액 기준 연평균 7.0%씩 증가했고,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연평균 가계대출 증가폭은 70조 원에 달했다.
커지는 이자 부담에... "신용대출부터 갚자"
올해 이례적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뒷걸음친 건 가파른 금리 인상 탓이 크다. 가계의 이자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 대출을 늘리기가 부담스러워졌다. 한은이 3월부터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도 뛰어 10월엔 연 5.34%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가계대출 연간 이자 부담액이 올해 9월부터 내년 말까지 최소 17조4,000억 원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여력이 되는 차주들은 마이너스 통장 같은 신용대출부터 서둘러 갚고 있다. 그 결과 지난달 신용대출 잔액이 한 달 만에 2조 원 넘게 줄기도 했다. 주택 거래 실종과 주식ㆍ코인시장 부진 등 짙어지는 경기침체 그림자도 대출 축소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저소득ㆍ저신용 취약차주의 대출액 감소는 원금 상환보다 대출 한도 축소나 실행 거절 등 금융접근성 제약에 따른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복현 "총량 관리, 달리 볼 여지 있다"
시장에선 당분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면 한은 역시 기준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이례적 가계대출 감소로 내년엔 대출 성장률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기 부진과 고금리 환경에 따른 디레버리징 압력이 지속되면서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총량 자체를 제한하는 기존 방식보다 대출 종류나 차주별 맞춤 관리 필요성이 더 커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가계부채 총량이 감소 추세인 건 명백하게 보인다”며 “과거와 같은 방식의 총량 중심 가계부채 관리 필요성에 대해 조금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상황에 맞춰 내년 살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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