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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피를 지워라"...아이들 납치해 '강제 입양' 보내는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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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피를 지워라"...아이들 납치해 '강제 입양' 보내는 푸틴

입력
2022.12.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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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사용 금지·"악한 우크라인" 세뇌
러시아 정부 주도의 '조직적 정체성 파괴'
이주 과정에서 폭력 등 학대 피해 당하기도

지난 11월 10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자리크네의 두 아이가 담벼락 앞에서 놀고 있다. 자리크네=AFP 연합뉴스

지난 11월 10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자리크네의 두 아이가 담벼락 앞에서 놀고 있다. 자리크네=AFP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러시아로 납치해 가족과 생이별시키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러시아 가정에 입양시켜 '우크라이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서다. '아동 납치'라는 범죄를 '전쟁고아 구출'로 포장해 아이들을 선전전에도 동원하고 있다.

독재 정권의 수법 '아동 납치'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납치돼 러시아 가정에 입양될 뻔한 12세 소년 사샤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3월 사샤는 폭격으로 눈을 다쳐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다 러시아군에게 붙잡혔다. 군인들은 사샤를 엄마에게서 떼어내 러시아가 점령 중인 동부 도네츠크의 병원으로 보내고 입양을 추진했다. 사샤에게 "우크라이나인들은 악하다"고 세뇌하고, 러시아어를 쓰도록 강요했다.

다행히 사샤는 입양되기 전 할머니 류드밀라의 번호를 기억해내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다. 류드밀라는 전쟁터를 피해 도네츠크로 가느라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러시아 등 4개국을 거쳐야 했다. 겨우 사샤를 만난 뒤에도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는 지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류드밀라는 "거짓말로 상황을 겨우 모면하고 아이를 데려왔다"고 했다. 하지만 사샤의 엄마는 9개월째 실종 상태다.

반대 세력의 아이를 납치해 입양시키고 세뇌하는 건 독재 정권의 오랜 수법이다. 스페인의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부도 각각 수만, 수백 명의 아이들을 납치해 친정권 가족에 입양시켰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강제 입양해 정체성을 지우고, 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흡수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의 알렉산드라 로만초바는 "(우크라이나 아이를 입양한 러시아 가정은) 아이가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도록 입양 경로를 숨긴다"며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님이 버리고 갔다" 거짓말로 꾀어내

지난 9월 14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러시아의 벨고로드 근처로 피란을 가는 아이들이 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벨고로드=AP

지난 9월 14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러시아의 벨고로드 근처로 피란을 가는 아이들이 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벨고로드=AP

납치와 입양은 러시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법령 개정을 통해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러시아 입양 절차를 간소화했다. 러시아 국영 방송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러시아 가정에서 환대받는 모습을 광고한다. 강제 입양을 주도하는 마리아 르보바-벨로바 러시아 아동권 옴부즈맨은 우크라이나 아이를 입양해 선전전에 동원하고 있다. 그는 올해 봄 자신이 입양한 마리우폴 출신의 소년 필립이 "처음에는 푸틴 대통령을 욕하고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지만 점차 러시아를 사랑하게 됐다"며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줘도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님이 너희를 버리고 갔으니 너희는 러시아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꾀어내는 식이다. 9명의 자녀 중 6명이 러시아로 끌려갈 뻔했던 올가 로파트키나는 "아이들은 러시아 공무원들로부터 '너희 부모님은 너희를 버렸다. 부모님은 잊어버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의 폭력도 보고됐다. 17세 아들이 벨라루스의 고아원으로 끌려갔던 라리샤 야호딘스카는 "러시아군이 아들을 벨라루스로 데려가기 전에 가둬 놓고 때렸다"고 폭로했다.

입양되기 전에 가족을 찾은 아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까지 1만764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혼자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보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숫자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어린이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로 강제 이주됐는지 집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입양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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