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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트남 관계 격상과 북한의 선택

입력
2022.12.19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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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남성욱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포괄적 전략 동반자' 된 한·베트남 관계
중국, 러시아, 인도와 같아진 한국 무게
베트남은 핵 고집하는 북한에 반면교사

윤석열(오른쪽) 대통령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오른쪽) 대통령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그들의 길을 선택하겠죠. 베트남은 지난 1986년 도이모이(Doi-moi) 개방 조치를 취했지만 우리가 평양에 같은 길을 권유할 수는 없습니다." 2019년 여름 호찌민에서 개최된 베트남 사회과학원(VASS)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공동 세미나에서 베트남 사회과학원장은 베트남의 개혁·개방 경험을 북한에 제언하면 좋겠다는 우리 의견에 완곡하게 고사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은 과거와 현재 베트남과 북한의 특수한 사회주의 관계 때문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았지만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수교했다. 1957년 7월 호찌민 주석이 북한을 방문하고, 이듬해 11월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하며 관계를 다졌다. 당시 김 주석은 환대에 기분이 좋았는지 2주 넘게 베트남에 체류했다. 호찌민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코끼리를 평양에 데리고 왔으나 평양동물원은 사료 조달에 애를 먹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파병되어 월맹군과 함께 미군에 대항해 싸웠으니 실로 혈맹 수준이었다. 당시 사망한 20여 명의 북한 조종사들의 무덤이 그대로 베트남에 있다.

베트남은 1975년 미군을 몰아내고 국토를 공산화했으나 10년도 안되어 경제가 파탄 났다. 극단적 공산주의자 레주언이 이끄는 통일 베트남은 기업인 숙청과 과격한 집단농장제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100만 명의 보트 피플은 참혹한 난민으로 바다에 표류하다 전 세계로 흩어졌다. 레주언 사후 베트남 지도부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며 독재 지도자가 나라를 흔들 수 없는 정치제도를 확립했다. 베트남은 미군 유해 송환은 물론이고 개혁 개방 요구를 수용하고 1995년 미국과 수교했다. 미국의 제재가 해제된 베트남은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아 초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 동반자 관계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파트너십으로, 동맹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의 우호관계다.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은 국가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다. 양측은 공동언론발표에 앞서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등 9건의 협정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베트남의 희토류 매장량은 세계 2위다. 인구 9,000만 명의 젊은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올해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액은 500억 달러, 수입액은 200억 달러에 달했다.

개혁·개방과 함께 미국과 수교해 경제발전을 지속 중인 베트남은 북한이 벤치마킹해야 할 최적 국가다. 미국은 15년간의 군사적 충돌로 5만7,000명이 사망한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해 철수했지만, 10년간의 경제봉쇄와 사회주의의 함정에 빠진 베트남을 백기 투항하도록 했다. 사회주의 국가로 함께 미국과 싸웠다는 북한과 베트남의 혈맹 의식은 과거의 유산이다. 2019년 김정은이 트럼프와 정상회담 장소로 하노이를 선택한 사실은 연대 의식에서 기인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날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58년 만의 열차 방문에 흥분했는지 하노이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베트남 개방 당시 국민소득은 81달러로 북한 국민소득(804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고도성장을 지속 중인 베트남은 지난해 1만1,000달러를 넘어섰다. 평양은 미래세대에도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해 미국과 강대강 구도를 형성한다고 둘째 딸 김주애를 발사 현장에 출현시켰다. 권력 세습도 핵무기도 없는 베트남은 경제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권력 세습과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은 식량난이 가속화되고 있다. 김정은이 북미회담 당시 감격스럽게 둘러봤던 하노이의 불야성은 핵과 미사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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