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성착취물 삭제' 구글에 요청했더니…답변만 1년 걸렸다

입력
2022.12.08 09:00
0 0

국제앰네스티 "구글이 2차 가해" 발표
기자가 신고했더니, "제3자는 안 받아"
피해자에게 '사진 있는 신분증' 요구도

(c)국제앰네스티 제공

(c)국제앰네스티 제공

"온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구글에서 제 이름을 검색했어요. 계속 검색하느라 하루에 1시간도 채 자지 못했고 계속 악몽을 꿨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 자체가 더 악몽이었죠."

디지털 성범죄 피해 생존자인 김수하(가명)씨는 구글에 나오는 자신의 비동의 성적촬영물을 삭제하기 위해 키워드와 영상, 이미지를 수백 번 스스로 검색하고 캡처했다. 이를 삭제하는 양식이나 절차도 제대로 안내되어 있지 않아 헤매던 김씨는 "신고할 때 피해 자료를 내야 해서 누구에게 대신 해 달라고도 할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신고를 했다고 바로 삭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가 구글에 답변받기까지 기다린 시간은 무려 1년.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구글은 거대한 유포 웹사이트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구글은 최악의 2차 가해 웹사이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앰네스티는 국내 온라인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의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들이 구글의 느리고 복잡한 콘텐츠 삭제 요청 시스템으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8일 밝혔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데도 비동의 성적촬영물 신고 절차를 찾기가 어려운 데다, 신속히 처리도 되지 않아 성착취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이 드러난 이후로도 국내에서는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가 잇따르는 등 성착취물 범죄는 갈수록 늘고 있다. 불법 촬영물, 성착취물 피해자를 상담하고 관련 영상물 삭제를 요청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요청 건수는 2018년 3만3,921건에서 지난해 18만8,083건으로 폭증했다. 반복적인 공유 및 유포가 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에 피해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기도 어렵다.

기자가 신고하려 했더니…"본인·대리인만 가능"

구글의 불법촬영물 신고 페이지. 구글 캡처

구글의 불법촬영물 신고 페이지. 구글 캡처

기자는 실제 구글의 성착취물 신고 절차를 알아보려 구글에 접속했다. 도움말 센터 페이지에서 '구글에서 정보 삭제'를 클릭하면 △동의 없이 공유된 선정적 이미지나 은밀한 개인 이미지 △동의 받지 않은 가짜 포르노 △미성년자 이미지 등 유형에 따라 개인정보 삭제가 가능하다고 나온다.

다만 삭제를 위해서는 귀하 또는 귀하의 공식 대리인만 요청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있어 제3자인 기자는 성착취물을 발견하더라도 신고를 할 수 없었다. 피해 당사자가 김씨처럼 자신의 성착취물을 검색, 신고하거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공식 기관에서만 조치가 가능한 셈이다.

이를 담당할 올해 관련 지원센터의 인력은 고작 39명, 그마저도 직원 절반이 넘는 22명은 기간제 인력이다. 또 전국 광역 지자체 17곳 가운데 13곳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 생존자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만 구글에서 신고하려면 '신고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라는 문장에 동의해야 한다. 김씨는 이 문장을 접하고 "어렵게 신고를 하게 됐지만, 콘텐츠가 삭제되리란 확신보단 처리가 안 된다면 '내 책임'이란 불안이 커졌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구글에서는 또 신고자에게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유포 피해를 본 생존자는 자신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곤 한다. 'N번방' 사건을 고발했던 추적단 불꽃 활동가 '단'은 "이미 피해 영상이 유포되는 온라인에 생존자의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올리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라고 국제앰네스티에 지적했다.

구글, 관련 질의에 공식 답변 안 해

(c)국제앰네스티 제공

(c)국제앰네스티 제공

국제앰네스티는 지난달 11일 관련 내용에 대한 질의서를 구글에 보냈다. 구글은 공식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국제앰네스티와의 개별 미팅에서 이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 향후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비동의 성적촬영물을 삭제하는 것은 생존자의 일상을 회복하는 필수 조건"이라면서 "구글은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들의 삭제 요청에 느리고 일관성 없이 대응함으로써 인권 존중에 실패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구글은 접근이 쉽고 절차가 간단하며, 처리 과정을 파악하기 쉬운 생존자 중심 신고 시스템을 도입해 또 다른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이날부터 구글의 신고 시스템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적인 탄원 캠페인을 시작한다.

전혼잎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