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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뒤흔드는 '반유대주의'..."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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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뒤흔드는 '반유대주의'..."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

입력
2022.12.08 04:30
수정
2022.12.0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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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126명 바이든에 대책 마련 서한
작년 반유대주의 범죄 전년 比 34%↑
"민주주의에 위협, 美 침묵해선 안 돼"


2020년 11월 미국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롯 근처에서 찢어진 이스라엘 국기 사이로 성조기가 보이고 있다. 스데롯=AP 연합뉴스

2020년 11월 미국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롯 근처에서 찢어진 이스라엘 국기 사이로 성조기가 보이고 있다. 스데롯=AP 연합뉴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증오’라고 불리는 반(反)유대주의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유명 인사의 잇따른 유대인 경멸 발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동조 행보로 잠재돼 있던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른 탓이다. 유대인을 배척한 극단주의 망령이 되살아날까 우려한 워싱턴 정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착수했고 산업계는 재빨리 선 긋기에 나섰다.

“유대 혐오 국가 전략 마련해야”

6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공화·민주 상하원 의원 126명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국가 차원 전략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유대 민족을 겨냥한 공격과 음모론은 유대인뿐 아니라 다른 공동체 안보와 민주주의 기반마저 위협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가르쳐줬다”며 범정부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유대 혐오 반대에 동조하고 있다. 백악관은 7일 유대계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가 주최하는 ‘반유대주의 퇴치 원탁회의’를 연다. 이 자리에는 미국 사회 유대계 지도자들이 초청됐다.

주(州)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버지니아 주 정부 소속 ‘반유대주의 퇴치위원회’는 전날 △공립학교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관련 교육 확대 △증오 범죄 법 집행 강화 △반유대주의 입장을 드러낸 회사와 계약 금지 등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냈다. 주 의회는 해당 내용을 검토한 뒤 입법 절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4일 카멀라 해리스(왼쪽) 미국 부통령과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가 워싱턴 백악관 케네디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4일 카멀라 해리스(왼쪽) 미국 부통령과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가 워싱턴 백악관 케네디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지난해 유대인 혐오 사건 2700건

정치권의 잇단 비판 목소리는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 혐오가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명예훼손연맹(ADL) 집계 결과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은 2,717건으로 1979년 조사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34% 증가한 규모다. 미국 내 유대인이 전체 인구(3억3,300만 명)의 2% 수준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반유대주의가 만연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적대적인 이념을 가리키는 ‘반유대주의’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증오다. 유대 민족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 2000여 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녔는데, 이 때문에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 정서가 확산될 때마다 직접적인 표적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반유대주의가 절정에 달한 후 서구에서는 해당 담론이 금기로 여겨졌지만 2017년 미국,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의 정치적 영향이 커지면서 반유대주의 역시 역사의 무덤에서 되살아났다. 처절히 반성하던 사회 분위기가 퇴색하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 감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2018년 10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미국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예루살렘=AFP 연합뉴스

2018년 10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미국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예루살렘=AFP 연합뉴스


친트럼프 인사도 등 돌려

최근에는 미국 유명 인사의 잇단 반유대주의 발언과 행보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 힙합 가수 예(Ye·개명 전 이름 카녜이 웨스트)는 10월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데 이어, 이달 1일에 “나치, 히틀러가 좋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카이리 어빙 역시 반유대주의 내용의 영화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 공유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참다못한 문화·산업계는 반유대주의에 동조한 유명인들과 줄줄이 손절에 나섰다. △프랑스 패션회사 발렌시아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할리우드 대형 기획사 크리에이티브아티스트에이전시 등이 예와 계약을 해지했고, 트위터는 계정을 정지했다. 나이키 역시 5일 어빙과 1,100만 달러(약 143억 원)에 달하는 후원 계약을 중단했다.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카녜이 웨스트(예). AP 연합뉴스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카녜이 웨스트(예).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반유대주의 이슈와 엮이는 정치적 악재에 맞닥뜨렸다. 직접적인 혐오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예, 극우 인사 닉 푸엔테스와 만찬을 함께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이후 친이스라엘 우익단체 등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던 유력 유대인 인사들이 줄줄이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정치적 우군 역할을 해온 공화당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악재다.

전문가들은 2018년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에서 발생한 유대인 겨냥 총기 난사 사건을 거론하며 혐오 확산을 경계했다. 당시 11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지프 차미 전 유엔 인구국장은 “반유대주의 용인은 민주주의에 도덕적 위협이 된다”며 “비극적 교훈을 바탕으로 더 이상 이 문제에 침묵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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