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날 밤부터 광화문광장 인파 운집
영하 3도 추위에 핫팩, 머플러 등 중무장
대량 실점에도 자리 지켜... 첫 골엔 환호
“그래도 후반전에 한 골 넣어서 너무 좋았어요. 추위도 잊었다니까요.”
6일 새벽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과 브라질의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을 응원한 홍수현(29)씨는 경기 종료 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영하의 추위에 눈발까지 날렸지만, ‘거리응원 메카’ 광화문광장엔 3만 명의 시민이 모여 한국 축구대표팀의 투혼에 힘을 보탰다.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에 1-4로 완패하며 카타르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면서 태극전사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0-4로 끌려가던 후반 백승호의 만회골이 터졌을 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시합 전날부터 광장으로… 목도리·핫팩 중무장
응원 열기는 경기 전날부터 뜨거웠다. 축구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는 광장을 5개 구역으로 나눠 거리응원을 준비했는데, 5일 오후 11시 30분 일찌감치 2개 구역이 인파로 가득 들어차 출입이 통제될 정도였다.
월드컵에서 12년 만에, 그것도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축구대표팀을 향한 시민들의 기대는 컸다. 6개월 간 배를 타다가 얼마 전 한국에 돌아왔다는 항해사 차원석(33)씨는 “바다에서 오래 지내 우울했는데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며 “16강전은 꼭 현장에서 챙기고 싶어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을 치른 정모(18)씨는 “거리응원은 처음이라 분위기도 살필 겸 집에서 빨리 출발했다”며 웃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6일 오전 2시 모든 구역이 응원객으로 가득 차자 경찰은 펜스 일부를 걷어내고 세종대로 전체로 응원 구역을 확대했다. 시민들은 초대가수의 공연을 보거나 응원가를 부르고, 스크린에 나오는 역대 월드컵 영상을 즐기면서 휘슬 소리를 기다렸다. 앞서 열린 일본과 크로아티아의 16강전에서 일본대표팀이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자 “한국이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반응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수은주가 영하 3도까지 떨어지고, 추위가 절정에 달하는 새벽 시간대를 감안해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정씨는 “추위를 생각해 보온병에 차를 담아 왔다”고 말했다. 남모(21)씨는 “상의만 5개를 껴 입었다. 맨 위에 입은 건 황희찬 유니폼”이라며 응원 의지를 불태웠다. 노점을 운영하는 최모(68)씨는 “날씨가 추워서 머플러가 잘 나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저체온증은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얼굴이 창백하거나 계속 졸리고 하품을 하면 응급센터 부스로 와달라”는 붉은악마 측 안내방송도 여러 차례 나왔다. 붉은악마와 대한축구협회는 거리응원 참가자들에게 일회용 핫팩을 나눠줬다.
연이은 실점에도 끝까지 "대~한민국"
경기 초반 한국이 연이어 실점하면서 한때 광장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했다. 4번째 실점 땐 곳곳에서 탄식과 비명이 광장을 휘감았다. 눈까지 내려 자리를 뜨는 시민도 더러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끝까지 광장에 남아 태극전사를 응원했다. 서동현(19)씨는 “우리 목표는 16강이었으니 선수들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큰 목소리로 선수들 이름을 외쳤다.
후반 31분. 마침내 백승호가 벼락 같은 중거리포로 첫 골을 터뜨리자 광장은 다시 달아올랐다. 서지원(21)씨는 “선수들이 너무 위축돼 보여 안쓰러웠는데 다행”이라며 깡총깡총 뛰었다. 이후 한국이 몇 차례 득점 기회를 만들자 시민들은 다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시합이 종료된 뒤에도 모두 박수를 치며 대표팀을 격려했다. 전재우(25)씨는 “소문난 강팀을 맞아 밀리지 않고 잘 싸웠다”면서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김모(24)씨 역시 “결과에 관계 없이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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