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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패션 디자이너를 보내는 11월의 종막

입력
2022.11.27 14:00
수정
2022.11.28 14:1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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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박소현패션 칼럼니스트

편집자주

패션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트렌드 한 스쿠프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라프 시몬스(왼쪽), 알레산드로 미켈레. 게티이미지, 로이터

라프 시몬스(왼쪽), 알레산드로 미켈레. 게티이미지, 로이터

잔혹한 11월의 한 주였다. 밀레니얼의 20대를 대변했던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자신의 브랜드 중단을 선언했다. Z세대를 열광시켰던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는 구찌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11월만 되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의 'Gone Till November'처럼 올해의 11월이 생각날 것 같다. 라프 시몬스와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그만큼 패션 신(scene)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컸다.

1969년생인 라프 시몬스는 28년 만에 자신의 브랜드 중단을 선언했다. 1972년생인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입사 20년 만에 구찌를 떠난다. 이들과 함께했던 90년대부터 2020년대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새로운 시절의 첫 장을 연다는 것은 최고의 영예이자 최악으로 자신을 몰아넣게 만든다.

라프 시몬스는 벨기에에 있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 Antwerp)를 나왔다. 1학년 신입생 가운데 단 10%만 4학년이 되어 졸업할 수 있는 무서운 학교이다. 지금의 그는 럭셔리 브랜드 프라다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블루칼라 집안의 자녀였다. 한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저 악명 높은 학교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참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애초에 그는 패션 전공자도 아니었다. 그는 패션을 독학했고, 패션과 교수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첫 컬렉션을 단 두 명 모델이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로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프린팅 기법으로 젊음 즉, YOUTH를 표현했다. 지금도 그의 브랜드는 YOUTH를 표방한다. 그가 브랜드 중단을 선언한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매출 부진에 대한 추측도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건 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오너의 말이다. "더 이상 10대들이 뭘 좋아하는지 떠올리기 어려워졌다." 20대의 그가 생각했던 젊음을 자신의 이름 아래 하기 어려워진 건 아닐까? 세월은 가고 사람도 브랜드도 변한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두 도시 이야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패션을 배웠다. 2002년 구찌에 입사해 가죽 및 액세서리(가방 등) 부문에서 일했다. 그러다 2015년 당시 혼란스럽던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그는 성에 구분 없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구찌를 그만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I feel Gucci(나 기분 최고야)'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와 구찌의 작별은 몇 년째 정체된 매출 상황일 수도 있고, 그가 구찌 안에서 머물 수 없을 만큼 커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찌의 모회사 케링(Kering)은 2021년 11월 자회사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떠나보냈다. (와이클리프 진의 노랫말처럼 패션의 11월은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걸까?) 그가 구찌를 떠났던 톰 포드(Tom Ford)처럼 그만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떠들썩한 권위자들은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오직 과장된 비교로만 그 시대를 받아들이려 했다(두 도시 이야기)."

물론 그들이 사라져도 젊음은 계속된다. 존 카사베티스(John Cassavetes)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21세에 감정적으로 죽습니다. 아마도 더 젊을지도… 예술가로서 내 책임은 사람들이 21세를 넘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두 디자이너가 그리고 자라나게 했던 젊음의 시절과 감성이 소멸하지 않고 이어지길 빌며 마지막 칼럼을 마친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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