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지지자, 유니폼 입고 룰라 반대 시위
'극우로 오인받을라' 축구 팬들 고민 커져
룰라 당선인 "노란색은 모든 국민의 것"
노란색 유니폼 이야기
브라질인 오마르 몬테이루는 ‘축구 성지’로 꼽히는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 스타디움 인근에서 맥주집을 운영한다. 축구 관련 각종 장식물이 가게 곳곳을 채우고 있지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노란색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이다. 이 유니폼이 ‘삼바 축구’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다. 몬테이루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노란 유니폼이 브라질 극우 상징이 됐기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종종 입었지만 이제는 입기 민망해졌다”고 토로했다.
24일 2022 카타르월드컵 브라질과 세르비아의 경기를 앞두고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이 때아닌 수난을 겪었다. 브라질 열성 축구팬들이 유니폼 착용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유니폼은 노란색으로, 목과 소매 부분에만 초록색이 들어갔다.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지만 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1953년부터 이어온 오랜 전통이다. 노랑과 초록은 브라질 국기에 쓰인 색이다.
노랑은 최근 브라질 극우 진영의 상징색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브라질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할 때 맞춰 입는 옷이 노란 셔츠다. 언뜻 보면 축구 대표팀 유니폼과 비슷하다. 이들은 노란 셔츠를 입고 브라질 국기를 든 채 대선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한다. 셔츠 대신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나오기도 한다. 선거 불복 집회에 모인 인파가 축구 응원단처럼 보일 정도다.
노란색을 극우 세력에 빼앗긴 축구팬들은 고민에 빠졌다. 노란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정치적 행위로 비칠 수 있는 탓이다. 지난 9월 대표팀 유니폼을 구입하려 했던 대학생 주앙 비토르 곤살베스 올리비에라는 영국 BBC방송에 “가게 주인은 내가 보우소나루 지지자라고 착각해 곧바로 룰라를 욕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40대 브라질 남성은 영국 가디언에 “그동안 축구 유니폼을 입는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이제는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축구 명가 브라질의 상징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이었던 유니폼이 ‘분열의 아이콘’이 됐다는 얘기다. 영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래틱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니폼이 브라질 극우에 납치됐다”고 보도했고, WP는 “브라질의 유해한(Toxic) 정치가 축구 유니폼을 얼룩지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서 극우 단체가 태극기를 들고 시위에 나서면서 국기가 보수 상징으로 호도된 상황을 연상케 한다.
룰라 당선인은 논란 진화에 나섰다. 그는 “노란색과 초록색은 특정 정당에 속한 색이 아닌, 나라를 사랑하는 브라질인 2억1,300만 명 모두의 색”이라며 월드컵 기간 노란 유니폼을 입고 응원할 것을 촉구했다.
축구계는 논쟁과 선을 긋고 있다. 최근 브라질 언론 오글로보가 아데노르 레오나르두 바시 브라질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관련 견해를 묻자 “이데올로기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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