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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가 빌라 주인?" 취약계층까지 울리는 악질 '전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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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가 빌라 주인?" 취약계층까지 울리는 악질 '전세사기'

입력
2022.11.23 04:30
수정
2022.11.24 10: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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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에 속아 '바지 집주인' 된 취약층 속출
①수급탈락 ②임대주택 퇴거 ③보증금 빚
몇십만 원 대가로 생활 잃고 생계·주거 파탄
계약 무효, 수급 유지 등 뾰족한 구제책 없어

신축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배우한 기자

신축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배우한 기자

서울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A(54)씨는 올해 7월 구청으로부터 돌연 ‘수급 탈락’ 통보를 받았다. 경계성 지능(지능지수 70~85)에 해당하는 20대 아들이 주택보유자라는 이유였다. 등기를 떼어보니 4월과 6월, 빌라 두 채가 아들 명의로 넘어왔다. 자초지종을 캐묻자 아들은 “부동산 중개인이 도장만 찍으면 50만 원, 30만 원을 준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털어놨다.

취약층으로 눈 돌린 전세사기 브로커

22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A씨 아들에게 접근한 부동산 중개인은 실은 ‘전세사기’ 브로커였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동시진행’ 전세사기 수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브로커는 빌라가 안 팔려 걱정인 집주인에게 접근해 원하는 가격(2억 원)보다 비싼 2억5,000만 원에 팔아 줄 테니 차액 5,000만 원을 수수료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한다. ②집주인이 응하면 브로커는 전셋값을 매매 가격보다 비싸거나 같게 하는, 이른바 ‘깡통전세’ 매물로 내놓는다. 신축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시세가 없어 세입자는 깡통전세 여부를 알 길이 없다. ③전세 세입자가 2억5,000만 원에 입주하면 집주인은 2억 원, 브로커는 5,000만 원의 수수료를 각각 챙긴다. 마지막 단계는 계약 기간(2년) 종료 뒤 전세금을 돌려줄 새 집주인을 찾는 일이다. ④브로커는 이때 집주인 명의를 ‘바지 집주인(A씨 아들)’에게 넘긴다.

원래 바지 집주인은 돈을 한 푼도 안 들인 ‘무(無)갭 투자’에 현혹되거나 수백 채에 명의만 빌려주고 대거 수수료를 챙기는 공범격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면 시세보다 비싼 전세보증금을 지불하고도 2년 뒤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전세사기를 발본색원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바지 집주인을 찾는 일이 어렵게 되자 브로커들은 장애인이나 기초수급자, 노숙인 같은 사회취약계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세입자에 더해 브로커에 속아 바지 집주인이 된 취약계층까지 피해 범위가 더욱 확산된 것이다.

취약계층 상대 전세사기 수법. 그래픽=신동준 기자

취약계층 상대 전세사기 수법. 그래픽=신동준 기자

브로커는 당장 생계가 궁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도장만 찍으면 용돈을 준다”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돈) 주는 사업을 한다”고 속여 명의를 옮겨 놓는다.

피해자들이 뒤늦게 문제를 인지했을 땐 이미 늦었다. A씨만 해도 약 80만 원의 생계ㆍ주거급여가 끊겼고, 지금 살고 있는 임대주택에서 퇴거 명령이 떨어질 예정이다. 얼마 뒤 이사하려던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도 박탈 위기에 처했다. 아들 앞으로 된 빌라 두 채는 깡통전세 매물이라 처분도 어려워 보증금 총액 4억9,0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A씨는 “죽지 못해 산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B씨도 브로커 꾐에 넘어가 명의를 빌려줬다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임대주택 거주 자격을 잃었다. SH는 올 초 그에게 집을 비우라며 건물인도청구 소송을 냈고, 그가 나가지 않자 불법거주 배상금까지 부과했다. 2년 후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B씨 역시 보증금 빚까지 떠안아야 한다.

올 들어 복지 소외계층을 돕는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 접수된 유사 피해상담 사례는 30건이 넘는다.

피해자 늘지만... 정부 "개인이 주의해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는 계속 느는데 구제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사기나 강박에 의한 계약을 무효로 하려면 매매계약 상대(전 집주인)의 사기 의도를 증명해야 하는데 여간 까다롭지 않다. 기망 행위 주체가 전 집주인이 아닌 브로커인 탓이다. 브로커를 고소해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길거리로 쫓겨나 주거ㆍ생계를 유지할 길이 막막하다.

노숙인 등 수급자 앞으로 수십 대의 차량 명의를 옮겨 각종 세금·과태료를 떠넘기는 ‘대포차’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수급 자격을 심의하는 시·군·구 산하 지방생활보장위원회는 차량 소유로 인해 재산 기준을 초과해도 예외로 인정하는 구제 대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신종 범죄인 전세사기는 이마저도 없다. 한 구청 관계자는 “대포차와 달리 전세사기는 구제 사례도, 판단 기준도 없다”고 난감해했다.

전세사기를 집중 점검하고 있는 국토교통부 입장도 마찬가지다. 고의로 수수료를 받고 명의를 빌려준 ‘악질’ 바지 집주인과 사기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매계약을 대가로 돈을 받은 만큼 오히려 전세사기 공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인이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가영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보증금 빚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생존에 필수적인 수급 자격 유지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광현 기자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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