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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워져야 하는 사람

입력
2022.11.13 12: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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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김영준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코스타리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빨간눈나무개구리 ⓒPixabay, David Mark

코스타리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빨간눈나무개구리 ⓒPixabay, David Mark

그동안 다양한 동물들의 삶과 애환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지만 그중 가장 많이 지면에 할애한 것은, 기후위기와 야생동물의 상관성이었죠. 아무래도 기후위기가 우리에게만 선택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곤충도 역시 기후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연구가 쏟아집니다. 곤충은 영양분을 분해 순환시키고, 상위 포식자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면서 생태계에서 주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인류의 농작물은 나비와 벌 등 다양한 수분매개 곤충에 의존하고 있으며, 육식곤충을 포함하는 건강한 생태계는 해충과 질병매개 곤충의 폭발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죠. 이를 생태계 서비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어떤 곤충들은 멸종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탄소배출 추세가 계속된다면 어떤 종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시원한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죠. 이동성이 떨어지는 곤충들은 생활사나 번식에 큰 장애를 겪고 사라질 겁니다. 물론 어떤 종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죠. 모기 같은 일부 질병매개 곤충과 농작물 해충의 지리적 범위가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양서류 감소는 해충인 모기의 급증을 초래했고, 결국 사람의 말라리아 발병률을 높였다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Pixabay, Oberholster Venita

양서류 감소는 해충인 모기의 급증을 초래했고, 결국 사람의 말라리아 발병률을 높였다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Pixabay, Oberholster Venita

곤충을 포함한 야생동물에게 얽힌, 복잡한 위협과 기회 요인들은 때때로 인간에게 그 결과물을 되돌려주기도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 대한 설명과 증명이 어려워 소수 사례만 알려지죠. 이미 설명해 드렸던 양서류 항아리곰팡이병은 여전히 전 세계 양서류 개체군을 갉아먹고 있으며, 그 결과가 인간의 질병에도 연관된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이 질병은 적어도 90종 이상의 양서류를 멸종시켰고, 최소 500종 이상이 멸종위기에 빠졌습니다. 특히 중미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는데, 이 현상과 사람의 말라리아 발병률을 같이 살펴보니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양서류 궤멸이 일어나기 전보다, 질병 영향이 최고조로 치달았을 때 연간 1,000명당 1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더 걸렸다는 것이었죠.

그 이유는 뭘까요? 소형 개구리는 성체가 되어서도 모기와 같은 작은 곤충을 먹습니다. 올챙이는 모기 알을 먹기도 하고,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와는 먹이경쟁도 하는데 올챙이는 장구벌레 성장률과 생존율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었죠. 특히 육식성인 어린 도롱뇽은 장구벌레를 많이 먹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모기 급증을 억누르던 양서류 개체군이 질병에 궤멸되자 늘어난 모기떼가 말라리아 전파를 촉진한 것입니다. 생태학에는 '희석효과'라는 이론이 있죠. 생물다양성이 높은 군집에서는 일부 생물종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런 종이 매개하는 병원체도 널리 퍼지기 어려워지죠. 바로 '희석'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화되면 어떤 종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고, 병원체도 활개 치기 십상입니다. 그 병원체가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킨다면 우리들의 문제가 되죠. 바로 그 사례가 이번에는 모기와 말라리아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조차도 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환경, 특히 자연생태계 문제는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알아도 이미 늦어버렸거나 해결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간 800만 마리 새가 죽어가는 것을 알고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천문학적 비용도 문제려니와 700만 채가 넘는 건물은 여전히 우뚝 서 있기 때문이죠. 이 문제들은 앞으로 하나하나 따박따박 빚 받으러 우리 앞에 다가설 겁니다. 그 전에, 더 늦기 전에 1758년 칼 폰 린네가 지어준 '슬기로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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