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도 욕먹고, 해도 욕먹는 '대통령 사과'의 정석은
①적절한 타이밍 ②진상규명에 처벌 등 후속조치
③사과 두려워 하지 않는 겸허한 마음가짐 갖춰야
그날 밤 살릴 수 있었던 156명을 죽음으로 기어이 몰아넣은 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긴박한 긴급구조신호(SOS)가 서울 이태원 도처에서 빗발쳤지만 국가의 응답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안전 시스템이 마비된 국가의 총체적 실패였다.
참사 발생 엿새 만인 4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로서 내놓은 첫 공개 사과 메시지다.
대통령실은 그간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원인 규명과 수습이 먼저'라며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112신고 녹취록' 공개로 참사 전후 경찰 등 당국 대응의 총체적 부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정부 책임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사과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위기에 빠진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은 대국민 사과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안 해도 욕을 먹지만, 해도 욕을 먹을 수 있다. 관건은 언제, 어떤 메시지를 담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느냐다. 사과의 시기, 내용, 형식에 따라 성난 민심은 수습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화를 더 키울 수도 있다. 대형 참사 때마다 갈림길에 섰던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를 돌아보며, '대통령 사과의 정석'은 어때야 하는지 들어봤다.
"부덕함 뼈저리게" 대국민 사과, 즉각 문책... '정면돌파' 택한 YS
'눈만 뜨면 사고가 터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엔 인명피해가 큰 대형 참사가 많이 터졌다.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을 만큼 참사는 취임 첫해부터 땅과 바다, 하늘을 가리지 않았고 YS는 그때마다 고개부터 숙여야 했다.
YS의 사과는 비교적 분명하고 단호했다. 1994년 10월 21일 등굣길 학생 등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강 성수대교 붕괴 참사 이후 내놓은 대처가 대표적이다.
참사 발생 7시간 만에 이원종 서울시장(당시는 관선 지자체장 시절)을 경질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이영덕 국무총리의 사표가 제출됐지만, 수습을 위해 반려했다. 야권에선 총리 즉각 경질 및 내각 개편 요구가 터져 나왔지만, 이를 잠재울 YS의 정치적 승부수는 대국민 사과였다. 참사 사흘 만에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섰다.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면돌파였다.
'내 탓이오' 통렬한 반성문... 멀끔한 차림에 참사 현장 방문 '역풍'도
미국의 심리전문가 베벌리 엥겔은 저서 '사과의 힘'에서 사과의 요건으로 '유감(regret), 책임(responsibility), 치유·보상(remedy)' 등 이른바 '3R'를 꼽았는데 YS의 대국민사과문은 비교적 '3R'에 충실하려 애썼다.
첫 문장부터 모든 게 '내 탓이오'를 외친 통렬한 반성문이었다. 국정 책임자로서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유감 표명' 등 에둘러 빙빙 돌려 말하는 대신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총리 사표 반려는 제 자신의 책임 통감 때문", "참으로 죄송스럽다"로 채워졌다.
참사 원인으로 압축성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쌓아 올린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짚어내고, "사고의 책임자, 관리태만 공무원을 지위고하 막론하고 엄단할 것"이라며 정부에 회초리를 든 것도 '책임'의 요건을 갖춘 대목이다. '수사(修辭)'로나마 국정 쇄신 및 사회 개혁 등 '어떻게 달라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나 YS의 사과는 한국을 방문한 미 국방부 장관에게 "부실기업을 떠맡은 기분"이라고 토로한 말 한마디가 알려지면서 진정성 논란이 일며 역풍을 맞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다짐했던 YS의 사과는 이듬해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면서 빛이 바랬다. 502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실종, 93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한국전쟁 이후 단일사고로는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참사였다. YS는 특별재난지역을 최초로 지정했지만, 피해가 워낙 커 구조와 수습 작업부터 쉽지 않았다. YS는 다시 국민 앞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참사 발생 21일 만에, '늑장 사과'로 이미 여론은 싸늘하게 식은 뒤였다. 참사 현장에 YS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밝은색 체크무늬 점퍼 차림으로 넥타이까지 챙겨 매고 멀끔하게 등장한 것도 국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의례적으로 거듭된 대통령의 형식적 사과와 반복되는 참사에 국민들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하늘을 우러러 죄인 된 심정" 사과의 '속도' 빨랐던 DJ·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형 참사 관련한 사과에 있어 누구보다 신속했다.
1999년 6월 30일 청소년수련원인 씨랜드 화재 참사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목숨을 잃자, DJ는 참사 다음 날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 무슨 말로도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는 비통한 심정"이라 밝히면서다.
사과의 속도는 빨랐지만, 후속조치는 유가족들의 분노를 달래기엔 미흡했다. DJ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못했다. 당국의 사고 원인 규명이 미흡한 데 반발한 유가족들의 '재수사' 요청은 끝내 관철되지 못했고,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 내각에서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DJ는 그해 10월 30일 56명이 사망한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 이후 경찰청장을 경질하며 발빠르게 책임을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인 시절이던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192명이 숨지자, 사흘 만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소방방재청을 신설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에 안전·재난 관리까지 포함시키며 국가 책임을 강조한 것은 그날 사과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노 전 대통령은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대통령의 무한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朴, 자기 반성 없는 '지각·대리 사과'... 고개 숙였지만 화 더 키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미국 소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 △측근 친인척 비리 등으로 여섯차례 대국민 반성문을 썼지만,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한 '용산참사'에 대해선 따로 사과하지 않았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공격으로 군 장병 46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천안함 침몰 사건 관련 "군 통수권자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침몰 발생 24일 만에 나와 '뒷북 사과'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유독 사과에 인색했던 대통령으로 꼽힌다.
사과를 하더라도, 정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로 늦었고, 간접적이었고, 자기 책임은 빠져 있었다. 시기, 형식, 내용 삼박자 모두 엇나간 셈이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때도 '오답노트'를 써내려갔다. 박 전 대통령은 참사 다음 날 진도에 내려가 희생자 가족들을 만났지만 '사과'는 곧장 튀어나오지 않았다. "학생들이 불행한 사고를 당해 참담한 심정",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며 위로의 뜻을 전했을 뿐이다.
그 사이 정부의 사과는 대통령이 아닌 사의를 표한 국무총리 입을 통해 처음 나왔다. 이른바 '대리 사과'였다. 대통령의 침묵이 깨진 건, 참사 14일 만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한 '간접 사과'였다. 유가족들은 "국민이 국무위원뿐이냐. 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진정성 떨어지는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인 건 참사 발생 34일 만이었다. 청와대 춘추관 연단에 홀로 선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며 허리를 굽혔고,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도 쏟아냈지만,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타이밍과 후속조치, 진정성이 관건... "대통령은 사과 두려워 말아야"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되기 위해선 '시기, 형식, 내용'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기는 ①빠르면 빠를수록 좋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게 관건이다. 국민들이 잔뜩 화가 나 있는데 뒤늦게 하는 사과는 소용이 없다. 형식도 중요하다. ②공식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 등 제대로 격식을 갖춰 국민 앞에 허리를 숙여야지, 비공개 자리에서 지나가듯 얘기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국민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렵다.
내용에 있어선 기본적으로 변명 대신 반성이 대전제다.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은 반감만 키울 뿐이다. ③구체적으로 무얼 잘못했는지, 국민들이 정부에 분노하는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④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바꿔 나가겠다는 '사과의 피드백', 즉 후속조치를 담아야 한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당국자들의 문책과 처벌, 변화를 보여주는 인적 쇄신, 법과 제도 개선 등이 해당된다. 사과는 결코 말로만 끝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의 겸허한 마음가짐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사과가 리더십의 타격으로 이어질까 우려해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대통령의 사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민심을 가라앉히고 국가적 개혁에 나설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대통령은 어느 순간에도 사과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사과를 주저할 때 국민도, 대통령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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