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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애도가 필요하다" 폭력과 슬픔을 기억하는 법

입력
2022.11.04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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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근 '기념의 미래'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물. 고려대 출판부 제공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물. 고려대 출판부 제공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레저나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재해지나 전쟁터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이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방식의 여행이다. 독일, 폴란드 등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 터, 일본 오키나와의 가마(집단자결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국가적으로 관리되고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장소로 거듭났다.

과거사 규명과 진실 복원이 사회적 이슈인 한국에서도 다크 투어리즘 장소가 있다. 제주도의 4ㆍ3 평화공원과 기념관, 5ㆍ18 민주화운동기록관 등 대규모 국가폭력이 일어났던 곳에는 이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기념행사도 뒤따른다. 4ㆍ3 이나 5ㆍ18 기념식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참여하고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다. 국가에 의한 죽음을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 인정하면서, 그렇게 기억의 정치는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념의 미래ㆍ최호근 지음ㆍ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발행ㆍ464페이지ㆍ2만1,000원

기념의 미래ㆍ최호근 지음ㆍ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발행ㆍ464페이지ㆍ2만1,000원

최호근의 '기념의 미래'는 "한국 사회가 기억의 정치에서 기념문화로 넘어가는 중"이라고 진단하면서 상징과 의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이 남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억압된 역사가 진실과화해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복원되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자 사회적 기억에도 변화가 생긴다. 유가족의 슬픔과 애도는 국가 주도의 의례로 '공식화'되었지만 동시에 그 반작용으로 '의례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사회적 기억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자연적 소멸과 망각에 의한 침식, 착종, 변형, 왜곡과 조작 가능성을 직시하면서 부단한 가공을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기념문화는 집단기억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념의 미래'는 제주도, 광주를 비롯하여 용산 전쟁기념관, 국립서울현충원 등 한국 내 12곳과 안네 프랑크 센터를 비롯하여 독일, 폴란드, 미국 등 9곳의 해외 기념 공간을 방문한다. 홀로코스트와 흑인민권운동 등 다양한 죽음의 자리를 기념하는 방식을 통해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검토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동원되는 거대한 기념비와 엄숙한 분위기를 연상한다면 오산이다. 국가 주도의 의례화를 경계하는 저자의 입장에 따라 작은 이야기들의 의미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책은 고통과 학살을 직접 교육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일인이자 유대인, 네덜란드인으로서 안네 프랑크를 조명하여 반유대주의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베를린의 안네 프랑크 센터라든가, 잔뜩 쌓여 있는 신발과 유리벽의 이름들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생각하게 하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 기억문화의 다각화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폭력과 고통을 전시하고 기념하는 다양한 방법을 전 세계가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각 공간의 특징과 의미를 상세히 분석하여 다크 투어리즘에 관심이 있거나 여행지에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된다.

사진 작품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살해한 3,500명 헝가리인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고려대 출판부 제공

사진 작품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살해한 3,500명 헝가리인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고려대 출판부 제공


과거사를 반성하는 데 적극적인 독일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기억의 피로로 인한 반감과 기억의 사소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청년 세대에서는 직접적 연관도 없는 우리가 왜 아직도 책임을 져야 하냐는 불만이 생기고, 중요한 기억은 사소하게 여겼다. 당장 우리 옆의 죽음에 대해서도 피로감이 나타난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가애도기간의 선포로 ‘위드 코로나’와 함께 계획 중이던 지역 축제, 학교 행사 등이 모두 취소되었으며 공공기관 및 학교에서는 검은 리본을 착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죽음을 애도하라는 전면적인 명령 앞에서 국가적 애도는 점점 의례화된다.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기사에는 국가를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만큼의 장례비가 지원되지는 않는다는 반론이 쏟아진다. 어떤 죽음을 국가가 애도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국가가 기념하는 죽음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국가애도기간이 누구를 향한, 누구를 위한 애도이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질문해 보자. 한국 사회는 아직도 애도하고 기억하는 법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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