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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린 사람들 5, 6겹 쌓여 신음"... 생존자들이 전한 이태원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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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린 사람들 5, 6겹 쌓여 신음"... 생존자들이 전한 이태원의 참상

입력
2022.10.30 19:00
수정
2022.10.30 21:43
6면
0 0

"도미노처럼 무너진 인파 겹겹이 쌓여"
'밀지 말라' 외침에도 상황은 계속 악화
참극 피한 이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를 맞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154명이 사망했다. 30일 새벽 사건 현장 인근에 주인을 잃은 신발 깔창이 떨어져 있다. 이한호 기자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를 맞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154명이 사망했다. 30일 새벽 사건 현장 인근에 주인을 잃은 신발 깔창이 떨어져 있다. 이한호 기자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들 손을 잡고 있었는데, 점점 아래로 빨려 들어가 놓치고 말았어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호주 국적 네이선(24)씨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154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날 밤 이태원 골목 압사 현장의 맨 앞줄에서 참극을 목격했다. 3년 전 대학에서 만난 ‘절친’ A(호주)씨가 사람 더미에 눌려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봤다. 함께 있던 다른 친구 두 명은 지금도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네이선씨는 “이 병원엔 친구가 없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참극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해밀톤호텔 골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 통제 불능 상태였다”면서 “몇 명씩 넘어지는 장면이 반복되다보니 사람들이 실타래처럼 엉켰다”고 회상했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하자 119 구조대원들과 경찰, 시민들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하자 119 구조대원들과 경찰, 시민들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이선씨는 앞쪽을 계속 밀어낸 골목 입구 쪽 사람들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People are dying)” “뒤로 가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미는 힘이 강해지자 가운데 낀 사람들은 점점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5겹, 6겹으로 포개진 이들은 힘에 밀려 서로를 짓누르며 신음했다. 네이선씨는 “마치 ‘인간 젠가’(나무 블록을 엇갈려 쌓아두고 차례대로 돌아가며 블록을 빼내 맨 위층에 쌓는 게임)를 보는 것 같았다”며 몸서리를 쳤다.

네이선씨는 겨우 탈출했지만, 친구들은 결국 골목의 맨 앞쪽에 깔렸다. 구조는 뒤쪽 사람들부터 한 명씩 들어내며 진행됐다. 이 때문에 친구들은 마지막까지 하중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숨진 친구 시신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날 보러 호주에서 한국까지 와 준 친구인데…”

30일 새벽 시신이 안치된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 앞에서 가족·지인과 연락두절이 된 시민들이 서성이고 있다. 최주연 기자

30일 새벽 시신이 안치된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 앞에서 가족·지인과 연락두절이 된 시민들이 서성이고 있다. 최주연 기자

한 끗 차이로 참사 현장을 피한 강모(26)씨 역시 전날의 악몽이 생생하다. 시험을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3년 만에 찾은 이태원의 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술집에서 나와 사고 골목 바로 윗길인 ‘세계음식거리’에 도착했을 때부터 꽉 막혀 있었다. 100m를 가는 데 40~50분이 걸릴 정도였다.

강씨와 여자친구를 사정없이 밀치던 뒤쪽 인파는 그저 ‘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강씨는 “뒤에서 ‘아 좀 나갑시다’라고 소리치면서 계속 우리를 밀쳤다”며 “상황이 이런 데도 경찰이 통제를 하지 않으니 저항할 틈도 없이 사고 골목 근처까지 떠밀렸다”고 말했다.

다행히 강씨는 호텔 골목에 다다르기 직전 셀프 사진부스 인근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장장 50분을 기다리다 다른 탈출로를 찾을 수 있었다. 어찌어찌 음식거리에서 빠져나와 보니 길가엔 구급차가 가득했다. 그는 “그때 큰 사고가 벌어졌다는 걸 직감해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나광현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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