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SF 시리즈 '욘더'
재현(신하균)은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한지민)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여보, 나 여기 있어". 이후는 '욘더'로 남편을 초대한다. 죽은 이의 생전 기억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다. 일종의 메타버스에서 재회한 부부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기억은 과거이고 그곳에만 머물러야 하는 부부에게 미래는 없다. 변하지 않는 영원은 과연 아름다운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티빙에서 최근 공개된 6부작 시리즈 '욘더'는 첨단 기술로 불멸에 대한 욕망으로 달아오른 시대에 반대로 소멸의 소중함을 환기한다. 25일 화상으로 만난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누군가의 죽음으로 내가 존재했다면 누군가의 생성을 위해 나도 소멸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 세상의 방향이 아닐까 싶었다"며 "인간의 삶이 숭고해지려면 아름다운 만남뿐 아니라 이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욘더'로 SF 장르에 도전했다. 영화 '왕의 남자'(2005)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뒤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등을 통해 주로 역사에서 이야기를 길렀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 행보다. 그는 "'자산어보'(2021)를 찍고 사극에서 멀어지고 싶었다"며 웃었다. 그때 이 감독은 7, 8년 전 썼던 '욘더' 시나리오를 다시 들췄다. 자기 복제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감독은 "소설 '굿바이 욘더'(2011)를 읽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땐 생각이 미숙해서 너무 판타지에 집중했고 결국 '망했다' 싶어 작업을 중단했다"며 "스펙터클이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 시나리오를 확 바꿨고 그래서 이야기 규모를 작게 가면서도 밀도 있게 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욘더'는 티빙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물 중 끝까지 완주한 이용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여느 SF물과 달리 '욘더'에서 시청자는 이야기에 쫓기지 않는다. 문학에 '진심'인 그는 곳곳에 시를 심어 쉼표를 찍는다. 극에서 재현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 마지막에 "누구나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 있대"라며 "언젠가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온대"라고 말한다. 이병률의 시 '사람이 온다'의 한 구절로, 이 감독이 작가에게 사용 허가를 받은 뒤 극에 썼다. 느리게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늘리는 게 '1,000만 감독'의 연출 지론이다. 이 감독은 "플랫폼이 다양해졌지만 현실에선 블록버스터 편중이 심해졌다"며 "보고 나면 배설감이 드는 블록버스터와 달리 막이 내리면 관객이나 시청자가 나를 채우고 싶고 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욘더'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이 감독은 욘더에 어떤 기억을 간직한 채 살고 싶을까. "네루다의 시집에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란 문구가 있어요. 그 어릴 적 나를 욘더에 남기고 싶어요". 환갑을 넘어선 그는 카메라 너머 검은색 캐주얼 점퍼에 비니(모자)를 쓰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웃는 그의 얼굴 주름엔 동심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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