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구지하철참사 현장 배식하다 갈비뼈 '금'... 사진기 한 대가 바꾼 봉사인생
알림

대구지하철참사 현장 배식하다 갈비뼈 '금'... 사진기 한 대가 바꾼 봉사인생

입력
2022.10.17 15:00
0 0

박영자 대구중구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홍보사업단장
제11회 모범노인 부문 대구시노인복지대상 수상
"젊을 땐 간병과 배식, 지금은 사진영상 재능봉사"
시부모 남편 간병 14년...우울증 극복하려 봉사 시작
"지역 이웃 내 가족으로 여기고 봉사할 것"

박영자 여사가 자신의 봉사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류수현 기자

박영자 여사가 자신의 봉사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류수현 기자

"50여 년전 시아버지께서 사 주신 사진기 한 대가 저를 봉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최근 모범노인 부문에서 올해 대구시노인복지대상을 수상한 대구중구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홍보사업단장 박영자(76) 여사에게 사진기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보물 1호'다. 보수적인 가풍으로 자기 절제와 속앓이가 심했고 우울증까지 보였던 그가 사진기를 접한 후 뷰파인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찾은 것은 물론 봉사인생으로 궤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사별한 남편이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감도 깨닫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단장이 젊었을 때는 배식과 간병 등 힘쓰는 일을 주로 했지만 지금은 사진촬영과 영상제작 등 재능봉사로 기울고 있다. 노인일자리 근로자들을 촬영하기도 하고 복지박람회 활동을 담기도 하면서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주위에 알리고 있다.

박 단장은 지난 2019년 10월 대구중구노인복지관에서 '영자 인도에 반하다'라는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1월부터 이때까지 33일간 인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중 45점을 내걸었고, 수익금은 모두 복지관에 기탁했다. 박 단장은 그해 대한민국정수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북 영주 출신인 박 단장의 할아버지는 소수서원장, 외할아버지는 안동의 도산서원장을 지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내로라하는 서원장 출신이다보니 보수적인 가풍이 어린시절을 지배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아버지는 유림단체인 담수회 발기인이었다. 박 단장은 시집온 후에도 종일 한복을 입고 올림머리를 하는 등 집안 맏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했다. 외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선물로 사진기를 한 대 사왔다.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박 단장이 자녀 성장과정을 필름에 담고 싶어 일본 출장을 앞둔 시아버지에게 사진기를 부탁했고, 미놀타 필름사진기를 쥐게 됐다.

사진기가 가져온 변화는 컸다. 주중 하루는 사진을 찍으러 나가도 좋다는 집안의 허락이 떨어졌다. 한 주에 필름만 10통을 쓸 정도로 박 단장은 길거리를 담아냈고 아이의 모습도 신나게 촬영했다.

"더 좋은 사진기를 사라"던 남편이 사별하면서 그의 인생은 봉사의 길을 걷게 된다. 지난 2002년 남편은 항암투병 중 박 단장에게 쌈짓돈 300만 원을 쥐어주며 사진기를 사라고 했다. 사진기를 사러 도심을 다니다 밤늦게 귀가해보니 남편은 이미 눈을 감은 뒤였다. 이 일은 박 단장에게 한으로 남았고 시부모부터 남편까지 도합 14년간 간병한 결과는 사별과 우울증으로 돌아왔다.

박 단장은 무작정 중구청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우울증에 짓눌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에는 정신병동의 환자를 보살폈다. 의사소통부터 인솔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박 단장은 "봉사를 거듭할수록 전문지식이 부족한 것을 체감했다"며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는 눈을 기르고 싶어 야간대학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192명이 숨진 대구지하철참사 때는 두 달 꼬박 오전 6시부터 하루 15시간 동안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 밥통을 내리다가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그는 지난달 27일 대봉교 둔치에서 열린 '2022 중구 복지박람회'에서도 사진 촬영 봉사에 나서는 등 영원한 현역으로 대구를 누비고 있다.

박영자(왼쪽) 여사가 지난 6일 대구 달서구 성당동 대구노인회관에서 열린 제26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으로부터 대구시노인복지대상 상장을 건네받고 있다. 대구시 제공

박영자(왼쪽) 여사가 지난 6일 대구 달서구 성당동 대구노인회관에서 열린 제26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으로부터 대구시노인복지대상 상장을 건네받고 있다. 대구시 제공

박 단장은 지난 6일 제26회 노인의 날을 맞아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건강한 노년의 모범 모델을 제시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구시노인복지대상을 받았다. 박 단장은 "지금도 이웃 주민 3명을 보살피고 있다"며 "이제는 지역과 이웃을 내 가족으로 여기고 살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박영자 여사가 자신의 봉사활동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류수현 기자

박영자 여사가 자신의 봉사활동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류수현 기자


류수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