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출신 최초' '여성 최초' 특허청장
"소송비 무서워 연구자 권리 포기 안 돼"
변호사단체 특허침해소송 독점에 직격
"변호사들, 변리사 쪽지로 법정서 얘기"
"특허청은 두뇌 집단… 직원 도우미 될 것"
특허권은 소리 없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쓸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지식재산에 대한 배타적 권리 확보를 통해 상대의 추격과 공격을 막는 방패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상대를 부릴 수 있는 창이 될 수도 있다. 지식재산권 등기 전쟁에 각국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유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오늘의 특허는 내일의 경제성장”이라며 “역대 정부가 지식재산 분야에 관심을 더 쏟아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변호사단체 반대로 도입되지 못한 ‘특허침해 변리사 공동소송대리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 청장은 “국익을 기준으로 본다면 (변호사단체의 반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20년 넘게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건 비극”이라고 직격했다.
이 청장은 산업부 관료 출신들이 독식하던 특허청 수장 자리에 민간인으로는 처음 오른 뒤, 특허 업무의 대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취임 4개월을 맞은 이 청장을 지난달 30일 정부대전청사에서 만났다.
-변리사의 특허소송 참여 제한을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매우 비효율적인 데다, 특허소송시장의 성장까지 막고 있다. 법정에 선 변호사들이 기술을 몰라 엉뚱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끊어 읽기를 잘못해 다른 용어가 되기도 한다. 방청석의 변리사가 변호사한테 쪽지를 줘가며 재판이 진행된다. 소송비용으로 큰돈 들였는데 재판까지 길어지는 거다. 변리사 소송공동대리제가 도입되면 싹 없어질 문제다.”
-소송시장의 성장을 막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대형로펌이 특허소송을 주로 맡는데, 비용이 매우 비싸다. 소송공동대리제 도입으로 중소로펌이나 청년 변호사ㆍ변리사가 소송대리에 나서면 비용이 파격적으로 낮아진다. 소송비가 무서워 중소기업, 연구자, 발명가가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특허소송시장이 커져야 우리나라 특허 경쟁력도 향상된다. 지식재산이 제대로 보호돼야 새로운 지식재산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청장이 변리사 출신이라 소송공동대리제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논점을 흐리기 위한 말이다. 관련 법안이 전임 청장 때 이미 국회 상임위까지 통과했다. 영국, EU, 중국, 일본은 공동대리제를 진작 도입했고, 변리사가 단독으로 맡는 곳도 있다. 하반기 국회에선 법안이 상정,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내년에 퇴직 연구인력 67명을 특허 심사관으로 채용한다.
“연구실에선 물러났어도 최신기술을 평가하고 심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인재가 많다. 이분들을 최소 200명 선발해 심사인력을 보충하고 기술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했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방침으로 3분의 1밖에 못 모시게 됐다.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를 계속 설득해서 확대해 나가겠다. 1년 넘게 걸리던 반도체 특허 심사기간을 두 달 만으로 줄인다면 국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퇴직자들이 기술을 유출하나.
“연구 능력이 뛰어난 분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자리를 제안받는다. 그분들이 기술 유출 의사가 없더라도 머릿속에 각종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그걸 굉장히 우려한다.”
-특허청 업무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가.
“자구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다. 1인당 연간 심사건수가 206건에 달한다. 미국(72건), EU(58), 중국(91), 일본(164)보다 훨씬 높다. 심사투입시간도 1건당 10.8시간으로 중국(22시간)의 반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특허 무효율은 47% 수준으로, 일본(15.2%)이나 미국(25.1%)보다 높다.”
-그래도 한국이 IP5(지식재산 선진 5개청 협의체) 일원으로 뛰고 있다.
“한국의 특허출원은 세계 4위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과 인구 대비 출원은 세계 1위다. 덕분에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 세계 지재권 분야 의제를 한국이 주도한다. 한국에선 특허청이 여러 외청 중 하나일 뿐이지만, 해외에선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다. WIPO가 최근 한국을 2년 연속 아시아에서 혁신 역량이 가장 높은 국가로 선정했다. 우리 기업들의 기술경쟁력과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국회가 지재권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에서도 높은 신뢰를 표시했다.
“2007년 특허청 노조 설립 후 처음으로 취임 100일만에 감사패를 받은 청장이 됐다. 심사와 심판 같은 특허청의 기본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소통에 힘쓴 것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한다. 특허청 직원 2,000명 중 1,400명 정도가 심사 관련 업무를 맡고 있고, 그중 1,000명은 박사 이상의 국내 최고 수준의 두뇌 집단이다. 그들의 노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서도 선제적이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대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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