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괜찮아요. 여긴 '기억다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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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괜찮아요. 여긴 '기억다방'이니까요"

입력
2022.09.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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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진단받은 70대 바리스타가 주문받아
"사회구성원으로 활동 가능" 치매인식 개선 캠페인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민회관에 마련된 '기억다방'에서 이순자씨가 음료 주문을 받고 있다. 박지연 기자


"에이드 한 잔 덜 나갔어. 여기 뚜껑 줘야지."


앞치마를 두르고 빵모자를 쓴 백발의 여성이 노란 커피차 위에서 밀려드는 음료 주문을 받으며 동료에게 말했다. 손에 든 기다란 스푼으로 음료를 저으면서다.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민회관에서 '1일 바리스타'로 활약한 이순자(74)씨다. 커피차 아래에선 밤색 앞치마를 두른 이문옥(78)씨가 음료를 건네받아 손님에게 전했다.

경도인지장애나 경증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직접 바리스타로 참여하는 이 이동식 카페 이름은 '기억다방'. '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의 준말이다. 이 카페엔 규칙이 있다.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이해하는 것. 커피값은 도장 2개. 도장을 받으려면 '치매 바로 풀기' 관련 퀴즈를 맞히거나 방향제 키트 만들기 체험을 하면 된다.

4년 전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뒤 지난해 치매 진단을 받은 이순자씨는 이날 한 차례 실수도 없이 주문을 받아 음료를 내줬다. 비결이 뭔지 묻자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치매 들통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절대 잊지 않으려고 수첩과 연필을 항시 들고 다녀요."

걱정하는 가족들 때문에 최근 오토바이 면허를 반납했다는 이문옥씨는 "내가 느끼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치매라고 한다"며 "오토바이 못 탈 만한 정신은 아닌데 (가족이 못 타게 하니까) 서운해서 울었다"고 했다.

기억다방은 치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도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약사 한독이 커피차 제작 등 비용을 지원하고 서울광역치매센터가 관리한다. 이날 기억다방은 21일 '치매 극복의 날'을 기념해 열렸다.

신경을 집중해서 일하던 이들은 커피차에서 내려오자 긴장이 풀린 듯 작은 실수로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예컨대 나이를 서로 바꿔 말하거나 이미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수준이다. 두 사람은 치매 진단을 받은 초기부터 약을 복용하고 치매센터에 다니며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치매, 초기에 관리 잘하면 일상생활 오래 유지"

27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민회관에서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이 '기억다방'의 1일 바리스타로 참여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한독은 2018년 중앙치매센터가 인증하는 '치매극복선도기업'으로 지정돼 신입 직원부터 김영진 회장까지 900여 명의 임직원이 치매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친구' 교육을 이수했다. 교육을 통해 치매환자 특징, 치매환자 대하는 방법 등을 익힌다. 한독 관계자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일상에서 치매 환자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며 "길 잃은 치매 노인을 만났을 때 경찰서로 모시고 가는 방법 등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매환자를 대하는 전문가들은 그러나 여전히 치매 진단을 꺼리거나 치매환자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1일 바리스타로 활약한 어르신들을 4년 동안 지켜본 전아영 성북구치매센터 인지건강센터 선임은 "치매 환자는 일상생활을 못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 어르신들 모두 스스로 전철과 버스를 타고 오실 만큼 인지 능력이 있다"며 "치매 진단을 받은 뒤 관리만 잘하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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