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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경제, 늙은 성직자에 질렸다"...이란 히잡 시위, 정부 퇴진 선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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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경제, 늙은 성직자에 질렸다"...이란 히잡 시위, 정부 퇴진 선봉에

입력
2022.09.27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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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된 경제난 해결책 제시 못하는 정부에 불만
시위대 향한 무력 진압에도 분노 폭발
서방, 이란에 추가 제재 경고 등 국제 문제화

2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이란 대사관 근처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이란 대사관 근처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이란에서 발생한 이른바 '히잡 여성 의문사' 규탄 시위가 연일 덩치와 규모를 키우며 이란 반정부 시위로 격화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83)를 겨냥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신을 대리하는 최고 지도자를 향해 비판 구호를 외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격화한 배경에는 오랜 기간 지속된 이란의 절망적인 경제 상황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다. 특히 종교적 교리만 강요하며 국민의 반발 목소리를 무력으로 누르려는 정부에 대한 분노 역시 시위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살인적인 물가상승률과 일자리 부족이 근본 문제

2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한 소녀가 아미니의 사진을 들고 있다. 리스본=EPA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한 소녀가 아미니의 사진을 들고 있다. 리스본=EPA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AFP통신은 노르웨이 비정부단체인 '이란 인권(IHR)'을 인용해 지난 17일 시위가 발생한 이후 이날까지 이란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최소 76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31개 모든 주들에서 시위가 보고됐고,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는 1,20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란 시위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머리에 쓰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마흐사 아미니(22)가 지난 16일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아미니의 죽음을 항의하던 시위는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로 30년간 장기 집권한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퇴진을 겨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시민들은 비참한 경제와 늙은 성직자들이 강요하는 종교적 규칙에 분노하고 있다”며 “아미니의 사망이 그 분노의 핵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란 경제는 장기간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핵 개발을 놓고 미국과 갈등을 겪으며 오랜 기간 경제제재를 받아 국민들은 살인적 물가 상승과 일자리 부족 문제 등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서방과의 핵 합의로 탈출구를 찾나 싶었는데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핵 합의 탈퇴로 다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다시 가하면서 이란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50% 이상으로 치솟았다. 일자리를 빼앗기고 빈곤에 허덕이던 시민들이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란 정부, 시위 때마다 유혈진압..."국민들의 저항감 부채질"

26일(현지시간) 시리아의 카미쉴리에서 한 쿠르드계 여성이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항의하고 있다. 아미니는 쿠르드계 이란 여성이다. 카미쉴리=로이터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시리아의 카미쉴리에서 한 쿠르드계 여성이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항의하고 있다. 아미니는 쿠르드계 이란 여성이다. 카미쉴리=로이터 연합뉴스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이란 당국이 유혈진압으로 억누르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된 점도 이번 반정부 시위에 불을 붙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재를 복원한 다음 해인 2019년에 이란 내 연료 가격이 최대 200% 가까이 인상되자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발생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당시 이란 당국은 헬리콥터와 기관총 등을 동원해 시위대를 사살, 1,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이번에도 시위대를 향해 유혈진압에 나서면서 시민들의 더욱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 외에는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이란 대선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대선 후보 등록 때부터 젊은 세대가 지지하던 개혁 인사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라이시 대통령은 집권 이후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해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이후 겨우 재개된 이란 핵 합의 협상조차도 교착 상태에 빠졌다.

EU, "이란의 시위대 향한 무력사용 용납 못 해"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있는 이란 대사관 벽에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던진 빨간 페인트가 묻어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있는 이란 대사관 벽에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던진 빨간 페인트가 묻어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제재도 검토하면서 반정부 시위는 국제 문제로도 비화하고 있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란의 비폭력 시위자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불균형한 무력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대통령도 “아미니 죽음과 관련한 개인과 단체에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이날 베를린 주재 이란 대사를 소환해 이란 정부가 시위자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평화 시위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내 폭력 사태에 대응해 이란을 추가 제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과 함께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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