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초강세에 파운드화·위안화·엔화 연일 추락
영국, 대규모 감세 정책 여파
중·일, 저금리 기조 포기 어려운 상황
유례없는 강달러 현상에 '경기 부양'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영국, 중국, 일본이 한숨 짓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돈을 풀어야 하는데, 이 경우 자국 통화 가치가 더 떨어져 투자금 유출, 경기 불안 등의 각종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긴축을 하자니 정부의 경기 부양 목표가 흔들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파운드화 사상 최저 폭락… 영국발 금융위기 오나
26일(현지시간) 파운드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한때 1.03달러까지 폭락했다. 사상 최저다. 이후 1.07달러 선까지 소폭 반등했지만 파운드화를 둘러싼 우려를 지우진 못했다.
이번 '파운드화 쇼크'는 영국 정부의 50년 만의 최대 규모 감세 정책에 시장이 반응한 결과다. 영국 정부는 지난 23일 파격적 감세안을 내놓았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내리고, 19%에서 25%로 법인세를 올리려던 계획을 철회한 게 골자다. 감세를 통해 가계 소비 증가를 유도하는 등 경제성장을 꾀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시장에선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물가 상승세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놨다. 이는 역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쇼크 수준의 파운드화 가치 추락으로 이어졌다.
영국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을 내비치며 급한 불을 껐지만 영국 정부의 운신 폭은 크지 않다. 이달 초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감세 정책을 철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준기축 통화인 파운드화 추락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도 심상치 않다. 전 영국 재무장관 짐 오닐은 “전형적인 금융위기 조짐”이라고 평가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영국이 결국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구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시진핑 3연임 앞두고 강달러에 속 끓여
시진핑 국가 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경기부양을 지상 과제로 내걸고 있는 중국도 강달러 현상에 발목이 잡힌 건 매한가지다. 위안화는 26일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하며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7위안’은 중국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외국 투자금 이탈 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 중국으로서는 위안화 약세를 손 놓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다급해진 중국 중앙은행이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0%에서 20%로 올리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지만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결국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에 나서야 하는데, 이는 경기 위축을 가져올 수 있어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후 중국이 외환 시장에 적급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 시장 개입하면서 완화 정책 유지 '모순'
일본 역시 복잡한 사정으로 엔화 가치 추락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22일 엔화가 달러당 145엔을 넘어서자 당국이 3조 엔(약 30조 원)을 투입해 환율을 140~142엔까지 떨어뜨렸으나, 일본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 유지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날 엔·달러 한율은 144엔을 다시 넘어섰다.
영국과 중국이 당장의 경기 부양을 위해 긴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면, 일본은 과거 경기 부양을 위해 풀었던 유동성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경기 부양을 제1의 목표로 삼았던 '아베노믹스' 정책에 따라 국채를 계속 찍어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풀었다. 하지만 이제 그 국채가 일본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리 인상을 했다가는 감당해야 할 이자가 만만치 않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국채 원금 상황과 이자 부담에만 24조 엔 을 책정했다. 일본재무성은 향후 금리가 1% 오를 경우 국채 이자 부담은 2025년 기준으로 3조7000억 엔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하면서도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자, 전문가들은 '모순된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시노하라 나오유키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다. 이런 상태를 오래 이어갈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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