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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에너지 독립의 상징 자포리자, 푸틴의 병합 속셈은…

입력
2022.09.24 05:00
수정
2022.09.24 12:4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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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앞에 서 있는 러시아 군용 차량. 에네르호다르=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앞에 서 있는 러시아 군용 차량. 에네르호다르=로이터 연합뉴스

자포리자.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주(州)의 중심 도시다. 드니프로 강변에 자리 잡은 이 도시에는 올 초까지만 해도 71만 명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발원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흐르는 2,200㎞ 길이의 강이 자포리자를 두 구역으로 나눈다. 강 가운데에는 호르티차 섬이 있다. 자포리자는 ‘느려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드니프로 강의 물살이 느려지는 지점에 있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자포리자의 사진들을 찾아보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호르티차 섬과 오래전 이 일대에 살았던 ‘자포리자 코사크’ 부족 문화를 간직한 옛 성채의 아름다운 풍광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 자포리자는 드니프로 강변의 야경이나 풀밭에 에워싸인 중세의 성채가 아니라 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유럽에서 가장 큰 핵발전소가 있는 자포리자는 러시아군에 점령당했고, 자칫 폭발이라도 일어나면 유럽이 핵 구름에 휩싸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전쟁 공포'의 도시로... 러시아, 에너지 통제권 노린다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하자 핵발전소 운영사인 에네르고아톰은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6기의 원자로 가동을 이틀에 걸쳐 중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3월 3일 러시아군 전차들이 발전소로 접근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이 벌어졌다. 4호 원자로에 칼리버 총탄들이 꽂혔고 6호에는 포탄이 날아들었다. 3월 12일 러시아 에너지기구 로사톰은 자포리자 원전이 자기들 소유라고 선언했다.

3월 3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인근 주민들이 원전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장벽을 쌓아 러시아군을 막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트위터

3월 3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인근 주민들이 원전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장벽을 쌓아 러시아군을 막고 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트위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달 3일 조사단을 보내 사흘간 상태를 점검했고, 11일 원자로는 ‘셧다운’됐다. 이미 발전모드는 중단된 상태였지만 냉각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를 생산해 왔는데, 이대로라면 원자로가 더 손상될 위험이 있어서 아예 끊어버린 것이다. 러시아군은 19일 자포리자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유즈노우크라인스크의 핵발전소 일대에도 미사일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캄캄한 밤 불덩어리가 치솟고 불꽃이 쏟아져내리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러시아의 ‘핵 테러리즘’을 비난했다.

IAEA는 15일 러시아에 자포리자 핵발전소 점령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체르노빌의 방사성 폐기물 시설을 탈취했다가 철수한 바 있다.

러시아군이 핵발전소를 군사 인프라로 만들고 에너지 통제권을 장악하려 한다고 우크라이나는 주장한다. 국경을 넘자마자 자포리자로 쳐들어간 것을 보면 러시아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자포리자는 핵발전소 외에도 열병합 발전소와 드니프로 수력발전소가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력 센터다. 철강, 알루미늄, 항공기 엔진, 자동차 공장이 몰려 있는 산업단지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첨병... "사회주의자들의 도시"

3월 4일 러시아군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3월 4일 러시아군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포리자의 역사는 길다. 2000~3000년 전 스키타이인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있으며 하자르, 페체네그, 쿠만, 타타르, 슬라브족 등 여러 민족이 이곳에 발을 디뎠다. 한때는 동로마제국의 무역로였지만 폴란드와 러시아, 오스만제국의 국경이 만나는 변경지대로 여겨진 세월이 더 길다. 크림타타르족의 공격을 막기 위한 러시아 제국의 요새가 지어졌고, 그 요새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롭스크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불렸다. 18세기 후반부터는 기독교 일파인 메노파 상인들이 폴란드에서 옮겨와 도시를 사들인 후 정착촌을 만들고 공장을 지었으나 격동의 혁명기를 거치면서 메노파는 미국 등으로 대거 떠나버렸다. 1921년 소비에트의 적군(赤軍)에 점령된 뒤 도시의 이름은 자포리자, 러시아식으로는 ‘자포로즈예’로 바뀌었다.

그후 자포리자의 역사는 산업화의 역사였다. 발전소와 공장들이 들어섰다. 드니프로 댐에서 오는 전기를 이용한 알루미늄 공장은 한때 유럽의 나머지 전체보다 생산량이 많았다. 자포리즈스탈이라는 거대한 제철소가 위치한 신도시는 소츠고로드, ‘사회주의자들의 도시’로 불렸다. 관료들과 노동자들이 살았던 주거단지와 쭉 뻗은 도로들은 사회주의의 ‘미래 도시’를 상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 정부가 독일군을 막기 위해 드니프로 댐을 폭파하면서 홍수가 일어나 수만 명이 숨지고 독일에 점령당해 다시 3만5,000명이 목숨을 잃는 시련도 있었지만, 전후에 댐은 재건됐고 도시는 계속 발전했다. 20세기가 시작될 때 2만4,000명이 살았던 곳에 2차 대전 직전에는 30만 명이 있었고 소련 말기인 1980년대에는 90만 명에 육박했다. 그 중심에 핵발전소가 있었다.

러시아의 에너지 통제... 핵발전 비중 ↑

우크라이나 드니프 강 건너 니코폴에서 바라본 자포리자 원전.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드니프 강 건너 니코폴에서 바라본 자포리자 원전.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크라이나는 전체 에너지 수요의 65%를 국내에서 충당한다. 높은 자급률의 기둥은 핵발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체 전력생산의 55.2%를 핵발전이 차지했으며 석탄화력 23.2%, 수력 6.8%, 천연가스 6.3% 순이었다. 특히 1985년부터 가동된 자포리자 핵발전소는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사용량의 5분의 1을 생산해 왔다.

핵발전 비중이 우크라이나보다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프랑스와 슬로바키아밖에 없다. 천연가스를 줄이고 핵에 더욱 의존하게 만든 주범은 러시아다.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서방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러시아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방법으로 목줄을 죄곤 했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에너지 독립을 향한 싸움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전력망은 여전히 러시아와 이어져 있고, 모자란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정정 불안과 부패는 고질적인 장애물이었다. 실상은 핵연료도 대부분 로사톰으로부터 공급받았으나 2008년부터 미국 웨스팅하우스라는 새 공급처를 뚫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존엄혁명’이라 부르는 2014년의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에너지 자립도를 더욱 높였다.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는 핵연료가 그 후로는 30%를 웃돌았다. 40%는 스웨덴으로부터 받는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정부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러시아 전력망과의 연결을 끊고 유럽연합(EU) 전력시스템에 가입하기로 돼 있다. 다만 EU 시스템과 동기화를 하려면 전력을 수입하지 않고 일정 기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고질적인 부패와 낡은 설비에 더해 전쟁까지 맞은 우크라이나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디젤유 수입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더 요원하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분석에 따르면 20년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석유 제품을 거의 자급자족했으나 지금은 6대 정유소 중 한 곳만이 가동되고 있다. 설비가 낡고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다.

그러니 에너지 독립의 중심에 핵을 둘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원자로 가동 수, 총 용량, 생산 전력에서 세계 7위, 유럽 5위다. 원전을 운영하는 에네르고아톰은 3만8,000명을 고용한 거대 기구이지만 부패 스캔들로 얼룩졌고, 빚이 늘어 지난해에는 웨스팅하우스로부터 핵연료를 받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게다가 자포리자마저 러시아군에 넘어갔다.

체르노빌의 악몽을 안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핵발전 대국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더 큰 역설은 이 나라가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선택한 핵발전이야말로 러시아와의 질기고 질긴 인연을 상기시키는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핵발전 둘러싼 소련·우크라의 '질긴 악연'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자포리자 원전 위성 사진. 나란히 서 있는 원자로 6기가 보인다. 맥사 테크놀로지 제공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자포리자 원전 위성 사진. 나란히 서 있는 원자로 6기가 보인다. 맥사 테크놀로지 제공

소련의 핵발전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련의 핵발전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냉전 시기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출발했다. 소련과학아카데미 원장을 지냈고 핵무기 개발과 체르노빌 원자로 설계를 주도했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이다. 핵 프로그램과 군산복합체를 이끌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중형기계제작부 수장 예핌 슬랍스키도 우크라이나 마키우카 태생이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핵발전의 중심지로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계의 갈등은 늘 잠복해 있었다. 체르노빌의 원전도시 프리퍄트에서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의 혼합어인 일종의 ‘퓨전 언어’ 키르지크가 널리 쓰였지만 러시아에서 온 기술자들과 우크라이나 현지인 노동자들이 수시로 충돌해 경찰이 상주하며 감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체르노빌 참사는 소련이라는 거대 국가의 실체를 가리던 안개를 걷어내고 관료주의와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1986년의 그 사고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반(反)러시아 감정을 극적으로 높였으며 몇 년 뒤 독립에도 큰 영향을 줬다. 사고 처리를 보며 환멸을 느낀 공산당 기득권 세력과 갓 태동한 야당이 한목소리로 모스크바에 맞선 것이다.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으며 몇 주 뒤 소련은 해체됐다.

미국 추산에 따르면 이미 7만~8만 명의 병력을 잃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한 채 동남부를 쪼개어 삼킬 태세다. 이 지역의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23일부터 나흘간 4개 주에서 러시아로의 병합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돈바스와 루한스크,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으로 점령한 헤르손, 그리고 자포리자가 대상 지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TV 연설에서 “네 지역의 다수 주민들이 내린 결정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존엄혁명 당시 자포리자에서는 반러시아를 외치는 시민들이 집결해 정부청사를 점령했고 2016년에는 자포리자 시의회가 ‘탈공산화법’을 통과시켜 도로와 행정구역들의 이름을 우크라이나식으로 바꿨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토 60만㎢ 가운데 15%를 점령했다지만 4개 주 가운데 러시아가 완전히 통제하는 곳은 없다. 푸틴이 주장하는 ‘주민들의 뜻’은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의 군사적 대결 위험성을 끌어올릴 것이 뻔하다.

※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가 장소와 공간의 의미로 풀어보는 최신 국제 뉴스를 4주 토요일마다 새로 연재합니다.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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