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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숨 바치는 효도는 약자들의 의무일까?

입력
2022.09.24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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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처자식이 희생해서라도 '효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1970년대 연극 '심청전'의 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년대 연극 '심청전'의 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심청전'에서 가난한 맹인의 딸인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결심을 하고 상인들에게 몸을 판다. 열다섯 살 소녀가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하도록 몰아간 현실에 대해서는 짚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이번에는 다루지 않겠다. 여하튼 이는 심청의 선택이고, 효도하는 사람과 희생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다. 그런데 효도하는 사람과 효도를 위해 희생당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도 많다.

'삼국유사' 권5에 실린 '손순매아(孫順埋兒)'를 보자. 신라 흥덕왕대 사람인 손순(孫順)은 가난해서 품을 팔아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다. 손순은 아이를 땅에 파묻어 죽이려 결심한다.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들로 갔다. 땅을 파니 석종(石鐘)이 나왔다. 이에 부인이 아이를 살리자고 제안한다. 부부는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돌아온다.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사연을 알게 된 흥덕왕은 손순에게 집 한 채와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었다.

'효자와 동삼' 이야기도 보자. 옛날 어느 마을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효자는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헤맸다. 드디어 명의를 만났지만 아무리 간청해도 처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효자가 칼을 들고 협박하니까 그제야 의원이 말했다. "사람 아이를 삶아 먹이는 것 외에 약이 없다." 집에 돌아온 효자는 아들을 죽여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한참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솥 안에는 아이가 아니라 동삼(童蔘)이 들어 있었다. 이 동삼을 먹고 노모는 병이 나았다.

위의 두 이야기처럼 자신이 아니라 아이를 희생해서 효도하려드는 이야기는 많다. 학계에서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살아효도(殺兒孝道)형 설화'라고 이름 붙여 연구할 정도다. 이 유형의 이야기에서 아이를 희생시키려는 주체는 효자, 즉 봉양받는 이의 친아들이다. 하지만 봉양받는 이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며느리가 아이를 희생해 효도하는 이야기도 많다.

삼국유사 5권에 담긴 손순매아 부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삼국유사 5권에 담긴 손순매아 부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번에는 '시아버지를 살린 며느리'란 민담을 소개한다. 옆 마을 잔치에 간 시아버지가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며느리는 아기를 업고 마중 나간다. 시아버지는 산 고개 길에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막 호랑이가 시아버지를 잡아 먹으려고 다가가던 참이었다. 이에 며느리는 업고 있던 아이를 던져 주며 외친다. "호랑이야, 배가 고프거든 이 아이를 잡아먹고 우리 아버님은 살려주렴!" 그리고 얼른 취한 시아버지를 부축해서 모시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잘했다고 칭찬하며 아내인 며느리에게 큰절을 했다. 이때 기척이 들려 내다보니 며느리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가 아이를 물어서 문 앞에 데려다 주고 갔다.

이상 소개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하다. 왜 효도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일까? 어른의 생명만 중요하고 어린아이의 생명은 하찮은 것인가? 목숨을 바치려면 자신의 목숨이나 바칠 것이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힘없는 어린아이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폭력인가.

심청이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니 좀 달라 보이지만, 크게 보면 '심청전', '손순매아', '효자와 동삼', '시아버지를 살린 며느리'까지 효도의 실천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있다. 효도를 위해 생명을 잃게 되는 대상은 다 어린아이이거나 여성 즉 전통사회 내부의 약자들이다. 그렇다면 성인 남성이 자기를 희생해서 행하는 효도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전국적으로 널리 전해지는 '효자할고(孝子割股)형 설화'가 있다. 효자가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부모님께 드려 병을 낫게 했다는 내용이다. 손가락을 끊어내어 피를 마시게 해서 부모님의 생명을 연장했다는 일화와 같이 전해지기도 한다. 허벅지살을 떼어내고 손가락을 끊는 '할고단지(割股斷指)' 행위는 전통시대 효자들에게는 흔한 효도 방식이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덕왕 때 향덕(向德)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를 봉양했다는 내용이 있다. '백범일지'에도 김구 선생이 넓적다리 살을 베어낸 후 너무 고통스러워 후회하는 일화가 나온다. 이런 자학적인 행위가 과연 효행일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여하튼 할고단지를 한 남성들은 힘든 일을 하기는 했지만, 효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것은 아니다.

백범일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범일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른 유명한 효자 이야기를 더 찾아볼까. 한겨울에 잉어를 구하기 위해 얼음판에서 낚시했더니 잉어가 저절로 뛰어올랐다는 효자 이야기, 오래 시묘살이하는 효자에게 호랑이가 감동받아 사슴 등 남은 한쪽 부모님 봉양할 거리를 갖다주었다는 이야기…. 성인 남성이 효도하는 이야기 중에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이야기는 없다. 죽는 것은 잉어나 사슴이다. 세세히 찾아보면 있을지 몰라도 바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손순 등 효자들의 효행은 널리 퍼져서 바로 중앙권력으로부터 보상받는다. 재물이나 전답, 집을 받기도 하고, 일종의 자기소개서에 쓸 만한 스펙이 되어 벼슬길 나가고 승진하는데 유리해지기도 한다. 즉, 성인 남성인 효자들은 자신의 생명 전체를 희생하지 않고도 현실적 이익을 얻게 된다. 반면, 희생당하는 어린아이나 여성들에게는 큰 이익이 없다. 생명을 잃기 직전에 구해지고 끝. 심청이가 중국 황후가 되기는 하지만, 황제가 효행에 감동해서 황후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들, 이상하지 않은가? 처자식을 희생해서라도 효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부장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족 구성원의 생명을 이용하겠다는 것 아닌가. 비록 효도라는 좋은 목적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약자를 억압하는 권력을 갖고 체제를 수호하는 이념을 퍼뜨리는 목적을 감춘 이야기 아닌가.

전해지는 효행담 중에 내가 보기에 가장 웃긴 민담이 있다. 옛날 어느 곳에 과부가 된 며느리가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자식도 없기에 친정에서는 개가를 권했지만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걱정해서 거절했다. 어느 날, 친정에서 꾀를 내어 거짓 부고를 보냈다. 친정에 간 며느리는 딸을 개가시키려는 친정의 계략을 알고 화를 냈다. 그 밤에 바로 친정집을 나섰지만 길이 험한데다가 밤이어서 빨리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그때 호랑이가 나타나 며느리를 태우고 눈에 불을 켠 채 달려서 집에 데려다 주었다. 며느리에게 감동받은 호랑이가 양아들 삼으라고 남자아이를 물어다 주는 결말로 끝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한국설화유형분류표 번호 413-5, '개가하지 않는 며느리를 도운 호랑이' 편에 실린 이 유형 이야기들의 기본 줄거리다.

민담에는 효자, 효부를 도와주는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이때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존재다. 산신령이나 조상신을 상징한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는 효도를 하도록 도와주는 호랑이는 결국 시아버지와 같은 가문의 남자 조상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며느리를 위한답시고 남편감이 될 성인남성이 아니라 대를 이어 제사를 모실 남자아이를 물어오는 호랑이의 엉뚱한 행동이 이해된다. 결국 며느리는 효성스럽다는 칭찬 몇 마디만 듣고 평생 자신을 희생해서 시댁을 위해 일만 하다 죽는 존재다. 이를 잘 아는 친정에서 며느리에게 다른 인생을 살게 해 주려 해도 그녀 스스로 거부한다. 왜? 이미 '효 이데올로기'에 세뇌됐기 때문이다. 그럼 그녀는 어디에서 그런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했을까? 학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여성에게는 한학 교육 기관도 닫혀 있었는데?

이야기, 어릴 적부터 주위 어르신들에게 들은 옛날이야기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근대 국민교육이 보급되기 이전의 교육은 생활 속에서 주위 어른들에 의해 이뤄졌다. 어른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척하면서 '우리에게 잘하라'는 교훈을 전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세뇌당한 심청도 며느리도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자신의 생명만큼 귀한 자신의 아기를 호랑이 앞에 던진다. 그녀들만큼 희생적인 효행을 할 용기와 능력이 없는, 아니 그럴 의향이 없는 다른 딸과 며느리들은 이런 효행담을 들으며 자신을 '나쁜 딸과 며느리'로 여기게 된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돌봄 노동은 참고 행하게 된다. 너무도 무거운 현실의 의무, 뻔뻔하게 자식과 며느리를 희생시켜 효도받으려는 부모에 대한 반감, 부모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욕망,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자식을 묻다 석종을 얻은 손순의 이야기는 삼강행실도에도 나온다. 사진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속 '손순득종(孫順得鍾)' 부분. 세종한글고전 제공

자식을 묻다 석종을 얻은 손순의 이야기는 삼강행실도에도 나온다. 사진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속 '손순득종(孫順得鍾)' 부분. 세종한글고전 제공

그러나 다시 읽어 보라, 세상에 전해지는 효행담들은 대개 여자와 어린아이, 현실의 약자들을 희생시킨다. 효도는 다시 왕에 대한 충성 이데올로기가 되어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세종 때 나온 '삼강행실도'가 중종 때 '속삼강행실도'를 거쳐, 광해군 때 또 '동국신속삼강행실도'로 다시 편찬되고 재발간된 이유를 생각해보자. 겉으로는 효자와 열녀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서 전쟁 후 흉흉해진 민심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면에는 임진왜란 이후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과 무능한 조정에 대한 반감이 생긴 사회 분위기를 효, 열을 통해 충으로 이끌어 가려는 지배계급의 의도가 있지 않았는가. 이렇게 지배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남의 집 효자효녀효부 부러워하는 어른들의 말을 들어도 죄책감 갖지 말자.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현실의 약자들에게 참고 복종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희생하며 보낸 자신의 청춘이 아까워 다시 자식며느리에게 보상으로서의 효도와 복종을 바라는 악순환이 보인다면, 이제 우리 대에서 끝내자.

추석 특집으로 계획한 글인데, 연휴 휴재로 차례가 좀 밀렸지만 꼭 젠더살롱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 이번에 내보낸다. 다른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은 분들께 가 닿기를.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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