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호명돼야 하는 이름,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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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명돼야 하는 이름, 김지영

입력
2022.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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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82년생 김지영'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스포트라이트 제공

6년 전 사회적 통계를 기반으로 남녀 간 차별을 작품화해 화제가 됐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에 이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김지영'은 선후배나 친구 또는 사촌 중에 한 명쯤은 있을 만한 이름이다. 연극은 흔하디흔한 이름을 가진 김지영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김지영에게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는 과정이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대부분도 여전히 김지영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32세의 김지영이 그의 엄마로, 아이를 낳다가 죽은 남편의 친구로, 남편을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언니로 빙의되는 일이 벌어진다. 빙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관습적인 남녀 차별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은 통쾌하다. 남편 대현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김지영의 과거를 더듬으며 아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 가난한 집에서 삼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작가가 꿈이었던 김지영. 어려서는 착하고 재능 있는 아이였고, 대학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며 취직 후에도 재능을 인정 받으며 꿈을 키워갔다. 그런 김지영이 왜 다른 이가 되어서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일까.

연극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스포트라이트 제공

그에 대한 대답은 굳이 소설과 연극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녀 간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억압한다. 작품은 가정에서 아들과 딸이 다르게 자라야 했던 환경부터, 직장이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골적 남녀 차별과 성희롱에 가까운 행동들을 고발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작품 속 사건들이 클리셰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이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뉴스에서는 번듯한 회사가 여직원들에게 일찍 출근해 청소와 점심 준비를 시켰다는 귀를 의심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젠더 인식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영과 지영 모로 이어지는 여성 차별의 연대기나, 3,0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고 '맘충'으로 몰리는 장면은 가슴이 아프다. 특히 축복받아야 할 임신과 출산, 육아가 한 여성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맺게 되는 현실은 침통하다.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하고 싶었던 지영이 기껏 찾은 일이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그 일을 하던 사람 역시 경력 단절의 학부모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때문에 그 일마저도 못하고 일을 그만두려 한다. 일이 단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 시간이 많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그는 선택을 망설이는 지영을 보며 자괴감이 들어 "나도 대학 나온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 육아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 변방으로 몰리는 장면은 여성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짚어낸다.

연극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스포트라이트 제공

착실하고 재능 있고 꿈 많았던 지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잃게 된다. 도대체 누가 지영의 이름을 빼앗고 그를 사회의 변방으로 내몬 것일까. 작품에는 특별한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술을 강제로 먹이고 성추행적 행동을 하는 부장님 정도가 가장 불량한 인물일 것이다. 지영이 원하는 자리를 남자라는 이유로 쉽게 차지하는 직장 동료도, 육아의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남편 대현도 악인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피해자이다. 김지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녀 차별적 행동들로 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 대체 무엇이 지영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 역시 답은 너무 명확하다. 우리 사회 남성 중심의 시스템,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여성에게 부담이 주어지는 체계가 그것이다. 해답은 너무 명확해서 힘이 빠질 정도지만 그 해결 방법은 막막하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남편 대현이 회사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육아휴직을 하고 지영이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며 마무리된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은 창작진의 의도겠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에게 부담을 주는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인가, 그래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행복한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극장을 나서는 동안 많은 여러 질문들이 머리를 맴돈다. 공연은 11월 13일까지 백암아트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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