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레몬을 줄 때면 해트트릭을 해버려" 손흥민, 긍정의 힘이 만든 13분의 마법

레스터전 교체 출전
시즌 첫 골 이어 13분만에 3골 몰아쳐
토트넘 6-2 대승 견인

손흥민이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손에는 '해트트릭 기념 매치볼'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든 사진을 올렸다. 그는 영국 속담을 패러디해 "인생이 레몬을 줄 때면 해트트릭을 해버려"라는 재치 있는 글귀도 함께 남겼다. 손흥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인생이 레몬을 줄 때면 해트트릭을 해버려(When life gives you lemons… Score a hat-trick)."

오랜 골가뭄에 시달렸던 손흥민(토트넘)을 일으켜 세운 건 긍정의 힘이었다.

손흥민은 1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훗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레스터시티와의 경기에서 세 골을 몰아 넣은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치있는 소감을 남겼다.

‘인생이 레몬을 줄 때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는 영국 속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인생에 시련(레몬)이 닥치더라도 시원하고 상큼한 레모네이드로 만들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랜 골 침묵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버텨왔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 전까지 8경기(리그 6경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2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갔지만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올 시즌 그가 올린 공격포인트는 개막전 1도움이 전부였다. 일부 현지 언론은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을 벤치에 앉힌 채 경기를 시작했다. 손흥민이 리그에서 벤치에 앉아 경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뉴캐슬전 이후 1년 5개월 만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손흥민은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팀이 3-2로 앞서던 후반 14분 히샬리송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10여분의 예열을 마친 그는 후반 28분 마침내 시즌 첫 골을 터뜨렸다.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돌파해 들어간 후 수비수 2명을 앞에 두고 오른발로 강력한 슈팅을 때린 것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마침내 마수걸이 골을 터뜨리며 부담을 떨친 손흥민은 득점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후반 39분 그림 같은 궤적의 왼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뽑았다. 후반 41분에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패스로 맞게 된 골키퍼와의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세 번째 골을 넣으며 불과 13분 만에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손흥민은 토트넘 역사상 교체로 나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첫 번째 선수가 됐고, 팀은 6-2 대승을 거뒀다.

그간 손흥민에게 쏟아졌던 비판도 찬사 일색으로 바뀌었다. 손흥민은 팬투표를 통해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Man of match)에 선정됐고, 유럽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으로부터 양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인 9.3점을 부여 받았다. 영국 BBC 역시 최고점인 9.39점을 부여했다. 2위인 토트넘 벤탄쿠르(7.90점)와 무려 1.39점 차가 날만큼 이날 손흥민은 독보적이었다.

콘테 감독도 경기 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손흥민의 활약에 행복하다. 그 동안 많은 기회에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골이 없으면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오늘 단 13분 만에 3골을 넣었다”며 “이번 시즌 많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골 없는 손흥민을 왜 선발에서 제외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러나 내게 손흥민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제 손흥민은 기분좋게 19일 귀국길에 올라 축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한다. 대표팀은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과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른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