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에 기안84의 자화상까지 등장? 라벨이 작은 캔버스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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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에 기안84의 자화상까지 등장? 라벨이 작은 캔버스로 변신했다

입력
2022.09.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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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양조, 기안84와 손잡고 한정판 출시
라벨에 작품 새겨 '가장 작은 전시회' 열어
시생산만 60만 장…라벨 개발 뒷이야기

여수밤바다 기존 제품(왼쪽)과 웹툰 작가 기안84와 협업한 리뉴얼 제품들. 기안84가 그린 작품 총 네 점이 각각 적용됐다. 보해양조 제공


"10년 동안 웹툰 '패션왕' 주인공 '우기명' 만 바라봤어요. 희로애락이 담긴 표정이 내 모습이 아닌가 싶어 그렸습니다."


3월 '기안84 제1회 개인전'에 출품된 팝아트 작품 '자화상'이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공개되며 이목을 끌었다. 다채로운 색감에 울고 웃는 우기명의 다양한 표정이 젊은 시절을 바친 기안84의 작품 활동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이 나왔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대중은 여전히 이 작품을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보해양조가 7월부터 기안84의 작품을 라벨로 만들어 붙인 소주 '여수밤바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100만 병 한정 판매하면서다.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소주병에 기안84의 팝아트 작품 네 점을 각각 적용했는데, 소주 라벨에서 보기 드문 화려한 색채에 작품의 의미까지 더해 인기를 톡톡히 얻고 있다. 월 평균 약 10만 병 이상 팔리면서 지난달 여수밤바다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27.4% 끌어올릴 정도다. 소비자는 소주 라벨 한편에 새긴 QR코드를 통해 도슨트(해설사)의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전시회'가 소주 한 병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소주 라벨에 '희로애락' 담아…여수밤바다에 적용

보해양조에서 7월 출시한 여수밤바다 리뉴얼 제품의 라벨 이미지. 웹툰 작가 기안84의 작품이 라벨로 적용됐다. 보해양조 제공


소주는 제품마다 맛, 품질 차이가 크지 않아 라벨, 병 모양 등 패키지로 제품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여느 식품보다 중요하다. ①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가 라벨을 뜯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천 조각을 활용해 스티커로 만들고, 롯데칠성음료가 14일 출시한 '처음처럼 새로'의 라벨에 캐릭터를 도입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밤바다는 여기에 의미를 더했다. 기안84의 작품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소주의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여수밤바다에 적용한 작품 중 '인생 조정 시간'은 기안84가 지칠 때 텔레비전 화면 조정 시간처럼 인생을 잠시나마 멈췄다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소비자들이 여수밤바다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 조정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보해양조의 설명이다.

많은 제품군 중 왜 여수밤바다였을까. 보해양조 관계자는 "대표 상품 잎새주는 마니아층이 두터워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제약이 많았으나 여수밤바다는 다양한 연령층에게 친숙한 술이라 기안84 작품을 활용하기 좋았다"고 밝혔다. 소주는 기호식품이라 소비자가 늘 찾던 제품을 주로 마시는데, 여행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경험도 마다하지 않아 이 제품도 부담 없이 맛볼 것이라는 판단이다.



라벨 크기 키우고 색상도 다양화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제품들. 라벨은 대체로 흰색과 검은색 등 대비되는 색깔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게 보편적이다. 뉴시스


소주업체들이 대체로 라벨에 비슷한 규격과 색상을 적용하는 것은 설비의 한계 때문이다. 각 주류 회사는 소주 라벨을 붙이는 라벨라 기기를 가졌는데, 라벨 크기를 바꾸려면 새 기기를 도입하거나 생산 라인을 교체해야 해 추가로 수천만 원을 들여야 한다. 색상은 보통 제작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눈에 띌 수 있게 흰색과 검은색 등 대비되는 색을 활용해 제품 이름을 돋보이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수밤바다는 라벨 크기를 키우고 잉크 색상도 다양화했다. 잎새주의 라벨 규격은 83x86㎜지만 여수밤바다는 기안84 작품의 원본 비율을 살리기 위해 90x90㎜로 늘렸다. 라벨은 외부 생산업체에서 만든 다음 보해양조에서 소주병에 붙인다. 이번엔 다행히 재고로 남아 있던 라벨라 기기 부품을 써서 추가 비용 없이 라벨을 부착했다는 설명이다.

색상은 파랑, 자주, 노랑, 검정까지 4개의 원색 재료를 바탕으로 100개 넘는 색을 조합해 화려한 색감을 만들었다. 그러데이션 효과가 추가됐고, 하늘색도 '짙은 하늘', '옅은 하늘' 등 세분화해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살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 색상과 채도를 생생하게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개발 과정에서 찍어 본 라벨이 무려 60만 장에 달한다. 보통 라벨이 나오기까지 열흘이 걸리는데, 기안84 라벨은 한 달 이상 소요됐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라벨 생산업체도 많이 어려워하더라"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면서 비용이 계속 들었지만 한 달 만에 최종 라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보통 소주 라벨을 인쇄할 때는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수월한 그라비어(오목판 인쇄) 출력을 쓰는데, 이번엔 비싸지만 품질이 높은 옵셋(평판 인쇄 중 하나) 방식을 사용했다. 또 원작의 색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조색 작업과 감리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웹툰 작가 기안84와 협업한 '여수밤바다' 리뉴얼 제품. 기안84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소주 라벨로 적용됐다. 보해양조 제공


보해양조 관계자는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의 품질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며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철학, 제품의 스토리, 브랜드 정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별화된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리뉴얼로 보해양조는 제품이 출시된 7월과 8월 역대 최고 매출을 잇따라 경신했다. 이에 힘입어 회사는 제품 라벨을 캔버스 삼아 앞으로도 더 많은 작가들과 손잡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방침이다. 기안84 같은 스타작가와의 협업이나 여수지역 신인작가를 발굴해 다양한 작가전을 기획한다는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여수에 가면 꼭 마셔봐야 할 술'에서 '여수에 가면 꼭 경험해 봐야 할 술'로 제품 브랜딩을 하려고 한다"며 "여수밤바다를 단순히 마시는 소주가 아니라 경험하는 문화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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