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세 모녀 비극'… 복지사각 못 찾았나 못 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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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세 모녀 비극'… 복지사각 못 찾았나 못 품었나

입력
2022.09.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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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훈성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의 빈소에서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뉴스1

#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60세였던 어머니는 1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식당에서 일하면서 30대 두 딸을 건사했다. 두 딸은 카드빚으로 신용불량 상태였고,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이들이 집주인에게 남긴 봉투엔 현금 70만 원과 함께 '밀린 공과금입니다. 그동안 고맙고 죄송했습니다'라는 메모가 있었다.

# 2022년 8월 21일 경기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달 초 집주인에게 연락해 '병원비 때문에 월세 납부가 늦어질 거 같다'며 사과했던 이들은 신변을 비관하는 9장짜리 유서를 남겼다. 60대 어머니는 암을, 40대 두 딸은 각각 희소병과 정신질환을 앓으며 칩거해 왔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빚을 남기고 수년 전 병사했고, 이후 생계를 책임졌던 아들도 3년 전 희소병으로 숨졌다.

8년 반 시차를 두고 반복된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최종적 안전망인 공공부조 체제의 허점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송파와 수원의 두 가족은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에 편입되지 않아 생계·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비수급 가구였다. 주 소득자가 숨지는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이로 인한 빈곤 추락을 막고자 마련된 긴급복지 지원 또한 받지 못했다.

차이도 있다. 송파 세 모녀는 생전 관할 주민센터를 찾아가 기초보장급여 신청 상담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세 사람 모두 근로능력이 있어 추정소득이 수급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였다. 반면 수원 세 모녀는 수급 신청이나 상담을 한 적이 없었지만, 건강보험료 체납을 근거로 위기 경보가 울렸고 주민센터에서 직접 주소지를 방문했다. 송파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발굴주의' 정책이 본격 도입됐고, 특히 2015년 말부터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전산 시스템이 가동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자택 방문은 세 모녀가 건보료를 체납하기 시작한 지 1년 4개월 만에야 이뤄졌고, 무엇보다 이들이 그곳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구제 절차는 거기서 멈췄다. '추적'은 위기가구 발굴 매뉴얼에 없었고 인력도 부족했다. 세 사람이 전입 신고 없이 수원시로 거처를 옮긴 사실은 이들이 숨진 이후 드러났다. 송파 사건 이후 대대적 개선에도 한계가 여전한 빈곤층 복지의 현주소를 보여준 셈이다.

장례도 무연고로 치러야 했던 수원 세 모녀의 비극 이후 복지 사각 해소책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에선 이들 가족이 장기간에 걸쳐 빈곤으로 추락했음에도 발굴 시스템이 위기를 제때 포착하지 못했고 소재 추적은 엄두도 내지 못한 점에 주목하면서, 시스템 고도화와 인력 증원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른 편은 기초생활보장제의 낮은 접근성을 문제 삼으면서 보다 수급자 친화적인 제도 개편을 요청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구조에 나서는 '신청주의'를 근간으로 하는데 까다로운 요건, 박한 지원, 사회적 편견 탓에 수급 신청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초보장제 혁신 부른 송파 세 모녀 사건

2020년 2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송파 세 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배우한 기자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과 함께 공공부조 체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사건이 있었던 2014년 말 복지 3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긴급복지지원법·사회보장급여법)이 동시 제·개정돼 이듬해 7월 시행되면서 수급자 선정에 발굴주의 요소가 본격 도입됐다.

개정 긴급복지지원법은 복지 당국에 위기가구 발굴조사를 의무화했다. 새로 제정된 사회보장급여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일명 '행복e음')을 활용해 유기적으로 위기가구를 찾게끔 근거를 마련했다. 기초보장급여를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 개편하라는 복지 현장의 오랜 요구에 따라 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된 것도 이때였다. 단일 소득 기준 아래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수급 여부가 갈리던 급여 체계가 선정 기준을 달리하는 4개 급여(생계·의료·주거·교육)로 다층화됐고 수급 문턱도 낮아졌다.

핵심 제도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과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가 시행됐다. 전자는 행복e음에서 선별한 행정정보로 통계적 예측 모형을 만들어 고위험 가구를 가려내는 전산 시스템이다. 현재는 18개 기관의 34종 정보가 활용되는데 수원 세 모녀의 위기 상황을 예측한 건보료 체납 정보도 그중 하나다. 후자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을 설치해 방문 상담·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전담팀은 보건복지부가 2개월마다 발굴 시스템을 돌려 추출한 고위험 가구 명단을 받아 방문조사를 수행한다.

발굴주의 정책 도입 후 복지 사각은 눈에 띄게 줄었다. 기초보장수급자 수는 2014년 132만8,700명에서 지난해 235만9,700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인구 대비 비율도 같은 기간 2.6%에서 4.6%로 상승했다. 재정 확대도 뒷받침됐다. 2014년 4조2,400억 원이던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올해 16조7,600억 원으로 4배가량 늘었다. 수급 자격의 최대 걸림돌이던 부양의무자 기준이 교육급여(2015년 7월), 주거급여(2018년 10월), 생계급여(2021년 10월) 순으로 폐지된 것도 사각지대 축소에 한몫했다.

그럼에도 증평 모녀 사건(2018), 관악구 탈북모자 사건(2019), 성북구 네 모녀 사건(2019), 방배동 모자 사건(2020) 등 빈곤층이 공공부조 바깥에서 숨지는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도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나기 넉 달 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된 일이 있었다.

"위기 발굴 시스템 고도화 시급"

그래픽=김문중 기자

수원 사건 이후 전문가 사이에선 위기가구 발굴 체제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 모녀의 소재지 확인 실패는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로 꼽힌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제도는 관할 주민센터가 대상자를 방문한 뒤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처리 대상자' 또는 후속 조치가 필요 없는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있는데, 현행 매뉴얼상 거주불명자는 비대상자에 포함돼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공공부조가 거주지 중심으로 제공되는 한계를 보여준 사례"라며 "매뉴얼 보완과 함께 광역 시도 단위에 위기가구를 추적하는 전담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위기가구 발굴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현행 발굴 시스템은 이상이 감지된 정보의 개수 등을 기준으로 즉각 개입이 필요한 '위기 발굴 대상자'와 그보다 덜한 '위기정보 입수자'를 가려 지자체에 명단을 통보하는데, 수원 세 모녀는 건보료 연체만 파악돼 후자로 분류됐다. 문제는 위기정보 입수자 수가 워낙 많아 방문조사가 어렵다는 점이다. 올해 3차(5~6월) 시스템 가동 땐 위기 발굴 대상자가 12만3,000명이 추출된 반면 위기정보 입수자는 544만 명에 달했다. 한 일선 공무원은 "방문조사가 필수인 위기 발굴 대상자 명단도 기존 수급자와 겹치거나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등 허수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발굴주의 강화로 대응 방향을 잡았다. 복지부는 이달 1일 1차관을 단장으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전담팀(TF)을 발족했고, 앞서 수원 사건 직후인 지난달 23일엔 △취약계층 연락처 연계 △경찰을 통한 위기가구 소재 파악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홍보 강화 △발굴 시스템 처리 정보 39종으로 확대 등 대책을 내놨다. 또 이달 6일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과 맞물려 전 국민 대상 '복지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시스템의 소득·재산·인적 정보분석을 바탕으로 기초보장급여를 포함해 수급 가능성이 있는 복지 제도를 안내받을 수 있다.

발굴주의 강화론엔 복지 담당 인력 확충 요구가 뒤따른다. 지난해 기준 찾아가는 보건복지전담팀 인력은 1만2,723명으로, 1인당 방문해야 할 위기 발굴 대상자가 105가구에 달한다. 박영용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회장은 "2010년대 이후 사회복지직 공무원 채용이 증가했지만 인력 재배치로 복지 담당 부서 인원은 그만큼 늘어나지 못했다"며 "주민센터마다 적은 인원으로 300종 넘는 복지 행정을 처리하고 있어 위기가구 발굴 업무에 힘을 쏟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급 주저하게 하는 환경부터 바꿔야"

서울 양천구 신정7동 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2020년 12월 21일 오전 관내 복지대상자 자택에 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발굴주의 강화만으론 복지 사각을 해소할 수 없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빈곤층의 사회안전망 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문화적 장벽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 세 모녀가 기초보장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공공부조 문턱을 낮춰 '신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높이는 게 정공법이라는 논리다.

이런 입장은 신청 기준 완화 주장으로 이어진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는 신청자의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에 일정 비율을 곱한 금액보다 적어야 수급 자격을 부여한다. 그런데 소득인정액 산정시 실제 소득에 기반한 '소득평가액'뿐 아니라 보유 재산의 '소득환산액'도 반영되기 때문에, 당장 쓸 돈이 없는 데도 재산 때문에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수급 빈곤층'이 생기는 구조다. 전기 요금을 여러 달 체납할 만큼 어려웠지만 낡은 자가주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창신동 모자가 대표적 사례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는 "공공부조 신청자 재산을 참고용이 아니라 소득으로 환산해 수급 여부를 결정하는 데 쓰는 국가는 한국 외엔 찾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까다로운 신청 절차 역시 비판 대상이다. 기본 제출 서류로 안내되는 건 급여신청서와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정도지만, 보통은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해가며 여러 건의 추가 서류를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소득 확인 서류를 요청받을 경우 일용직은 행정전산상 확인이 어려워 따로 증빙 서류를 구해 제출해야 한다. 근로능력이 없다는 걸 입증하려면 불편한 몸으로 의사를 찾아가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온존해 있어 신청하려면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자녀 등에게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멀리 살거나 연락이 끊겼다면 난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보장 수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생계급여의 경우 기준중위소득 30%에 해당하는 금액과 가구 소득인정액의 차액을 지급한다. 매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기준중위소득은 그러나 '국민 가구소득의 중앙값'이란 개념이 무색하게 현실 가구소득의 중앙값에 한참 못 미친다. 가구 조사에 기반한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상 4인가구 월소득 중앙값은 2020년 기준 652만 원이지만 그해 기준중위소득은 474만9,174만 원이었다. 의료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진료는 지원하지 않는다. 고가의 비급여 진료가 필요한 중환자라면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여건이다.

현장에선 수급이 무산되거나 신청 절차를 포기하는 경험을 거치며 빈곤층이 공공부조를 불신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한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의 복지 제도는 수급 신청 과정에서 잦은 의심을 받으며 가난을 반복해 증명하게 만들고 있다"며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신청을 주저하지 않고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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