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8명 목숨 앗아간 경남 창원 마산항 일대
재해위험지구개선 사업…방재언덕·배수펌프장 설치
모래 주머니 쌓고 좌판 치우고 시설물 '꽁꽁'
바닷물이 넘치지 않게 차수벽까지 만들었지만 매미보다 더 큰 놈이라고 하니 걱정이 안 되겠심니까.
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월영동 주민 서영길씨
5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매미추모공원에서 만난 서영길씨는 "우짜든지 대비를 잘해서 그때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낀데"라면서도 20년 전 악몽을 지우지 못한 듯 이같이 말했다.
서씨를 비롯해 월영동과 해운동에 20년 넘게 거주한 주민들은 2003년 9월 12일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오후 8시 집채만 한 파도와 폭풍 해일이 일대를 덮쳐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상가 지하 노래방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순식간에 바닷물이 들이차 12명이 숨졌다. 월영동과 해운동은 마산만에 접한 저지대 매립지로 구조적으로 태풍과 집중호우에 취약하다. 당시 바다에 떠 있던 원목들이 파도와 함께 마산항 일대를 덮치면서 상가를 막아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1959년 사라 이후 한반도에 상륙한 가장 강한 태풍으로 공교롭게 추석 연휴 즈음 발생했고, 이동경로도 비슷한 힌남노가 북상한다는 소식에 일대 주민들은 또다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차수벽에 모래주머니까지...만반의 대비
20년 전 피해를 입은 마산항 일대는 재해위험지구 개선사업으로 일단 만반의 대비를 끝내 놓은 상태다. 대표적인 게 바닷물의 범람을 막는 차수벽이다. 마산지방해양수산청과 마산합포구청 공무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월영동 합포수변공원에서 높이 2m, 너비 10m의 벽 20개를 세웠다. 기존에 고정돼 있는 강화유리벽까지 더하면 길이 1㎞의 차단막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2018년 설치 이후 두 번째 가동이다. 창원시는 2018년에는 길이 1,250m, 폭 30~70m, 높이 4.5m의 방재언덕을 구축했고, 2020년에는 마산만과 해안도로 사이에 시간당 80㎜, 분당 2,174톤을 감당할 수 있는 배수펌프 2개를 만들었다.
불안한 주민들 안심 못 하는 상황
20년 전과 달라졌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에 안심을 못하는 분위기다. 일단 태풍이 경남 앞바다에 상륙하는 시기가 만조 시간과 겹친다. 기상청에 따르면 6일 마산의 만조 시간은 오전 4시 48분으로 힌남노가 거제와 통영에 상륙하는 시간(오전 5~ 6시)과 거의 비슷하다. 차수벽에 방재언덕까지 만반의 대비를 했지만 만조 시간까지 겹칠 경우, "이를 감내해 낼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주민들에게 깔려 있다.
이날 오전 만난 전차휘(65) 마산어시장상인회 사무국장은 "그제부터 모래주머니를 나눠 주고 시장 자체 방송을 통해 태풍 대비 요령을 홍보하고 있다"면서 "매미 피해를 경험한 상인들이 많아서 배수구를 청소하고 간판을 노끈으로 동여매는 등 자발적으로 태풍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배포된 모래주머니만 3만여 포 정도다. 마산어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숙이(65)씨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지난 주말부터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좌판도 치우는 등 태풍 단도리(대비)를 해놓고 오늘 저녁 장사는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날 수족관을 비우고 문을 닫은 가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창원시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저지대 등 침수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156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이 중 45명이 해운동과 월영동을 포함한 마산합포구 주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행정복지센터와 경로당, 마을회관 등 안전지대로 대부분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마주친 마산항 주변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20년 전의 악몽이 이번 만큼은 스쳐 지나가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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