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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반대에도 한·소 수교 추진.. 한국과 인연 깊은 '고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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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반대에도 한·소 수교 추진.. 한국과 인연 깊은 '고르비'

입력
2022.08.31 21: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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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 행보로 한국의 선수교-후경협 제안 수용
4차례 방한, 노태우·DJ·노무현과 회담하기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2009년 10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베를린=AFP 연합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2009년 10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베를린=AFP 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91세로 타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 연방(소련)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한·소 수교의 물꼬를 트는 등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과 북방정책의 합작품인 양국 수교를 이룬 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방한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소 수교 원칙에 합의한 주역이다.

당시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은 '선수교-후경협'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우선 경제협력 관계를 다지고 나중에 수교를 맺자고 맞서왔기 때문이다. 또 소련의 맹방인 북한이 한·소 수교를 결사반대한 것도 소련에는 부담이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88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상에게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여러 난제에도 1990년 6월 4일 미국 방문 중 역사적인 첫 한·소 정상회담에 응해 수교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소련에 이익이 되는 경협을 위해 한국의 수교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고르바초프의 실리적인 행보가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도 소련과의 수교로 당시 추진하던 북방외교에 정점을 찍을 수 있었다.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역시 한소 수교가 이뤄졌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후 한국을 4차례나 방문했다. 그는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4월 19일 소련 정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 일정을 마친 후 방한했다. 다음 날 그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2001년 11월 한·소 수교 10주년을 계기로 한국을 두 번째 방문해 청와대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찬했다.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10년 뒤 같은 상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의 만남이라는 상징성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2006년 6월에도 한국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났으며 2008년에는 종교계 초청으로 방한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저명한 정치인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매우 애통하다”고 조전을 보내는 등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유지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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