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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장이 가로막은 반도체 물길

입력
2022.08.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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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원삼면사무소 인근 마트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트 후보지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임명수 기자

경기 용인시 원삼면사무소 인근 마트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트 후보지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임명수 기자

또다시 '물'이 발목을 잡았다. 국가 소유의 물을 자신의 것인 양 '볼모'로 삼은 지방자치단체장 탓에 새 반도체 공장 건설이 뒤죽박죽될 위기에 처했다. 시행사 용인일반산업단지(SPC)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차세대 메모리 생산기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120조 원을 투자해 공장 4개를 짓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충우 경기 여주시장(국민의힘)이 최근 SPC가 신청한 공업용수 관로 건설 인허가 절차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 생산에 물은 매우 중요하다. 일 년 내내 설비를 돌리고 소재·부품·가스·화학 물질 등을 씻어야 하고 사용한 물을 내보낼 때도 높은 수준으로 정화 작업을 해야 해서 하루 수만 톤 이상 필요하다.

SPC도 물 확보를 위해 2021년 용인시와 경기 이천시, 여주시와 협의에 나섰다. 여주 남한강에서 시작해 여주~이천~용인을 잇는 땅속 관을 통해 물을 공급받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당시 여주시장은 주민 동의를 얻으면 인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했고, SPC는 왕대리 등 4개 마을 주민들을 1년 넘게 설득해 6월 70억 원의 마을 지원안이 담긴 상생 협의서를 만들었다. 그 밖에 여주시에도 취약계층 사회공헌활동, 지역 청년층 반도체 인력 양성 지원 등 수십억 원 규모의 상생 방안도 따로 제시했다.

그런데 6·1 지방선거로 뽑힌 이 시장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며 약속을 뒤집었다. 그는 지난달 "SK하이닉스, 정부, 경기도는 상생 방안 없이 여주에서 물을 끌어 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여당이 다수인 여주시의회도 동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나 SPC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물길 내는 인허가권을 가졌을 뿐인데, 물이 흐르는 것을 막으려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천시와 용인시는 인허가를 내줬지만, 여주시 때문에 관로 공사는 시작도 못 할 상황이다. 2019년 사업계획 발표 뒤 환경 영향평가가 늦어져 3년이 지나서야 기초 공사를 시작했는데, 공장이 지어져도 물 공급 문제로 2027년 가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전 세계는 반도체 기업 모시기 전쟁 중이다. 각국 정부와 지자체들은 보조금, 세금 혜택과 함께 물, 전기 등 인프라 지원에 열심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가뭄 때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TSMC 공장에 물을 먼저 공급하자며 농민들을 설득했다. 미국,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반도체 기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이웃 지자체를 설득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여당 소속 여주시장은 딴지를 걸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시장을 둔 용인시나 정부 관계자도 난감해하고 있을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 SPC 등이 여주시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주시장의 추가 요구를 받아주면 '제2, 제3의 여주시'가 나타날 게 뻔하다. 재계 관계자는 "여주시장은 대동강 물 팔겠다는 봉이 김선달 같다"며 "어느 기업이 여주시 사례를 보고 국내에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할 지자체장 때문에 기업과 지역민의 한숨만 깊어지게 생겼다.

박상준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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